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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 문학 산책] 민중의 애환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시인 신경림을 기리며...

등록일 2024.07.05. 작성자 허선이 조회 273

 

 

고 신경림 시인

▲ 고 신경림 시인

 

 

‘농무’. ‘가난한 사랑노래’, ‘낙타’ 등의 작품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던 신경림 시인이 지난 5월 별세했다. 민중의 고달픔을 이야기했던 그의 시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그는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중 한분이며, 우리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동문으로 우리대학 석좌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삶 속에서 민중 시인의 영감을 받다
신경림 시인은 1936년생으로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을 겪는 등 쉽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낸 분이다. 시를 읽고 토론하며 문학적 소양을 키워나가던 청년 신경림에게 문학은 인생 그 자체였다. 고교 졸업 후 그는 우리대학 영문과에 입학하고 1956년 『갈대』라는 작품으로 등단한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 中 한 구절> 

 

 

 

그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 『갈대』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한다는 그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시인은 갈대의 울음에서 사람 사는 일의 설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시인은 어떤 시를 쓰는 게 옳은 것인지 생각에 잠겨 잠시 작품 활동을 멈췄다. 당시 그의 집안 사정은 좋지 못했고 등록금을 낼 경제적인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농부, 광부, 장사꾼 등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이 경험은 훗날 그가 민중 시인이 되기까지의 발판이 돼 주었다. 그는 여러 일을 하면서 세상을 배웠고 민중을 보다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농무』이다. 

 

 

 

‘(중략)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농무 中>

 

 

 

『농무』는 1973년 발표한 작품으로 ‘농촌에서 농사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춤’인 ‘농무’를 제목으로 한 시다. 신 시인은 『농무』를 통해 농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으며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저항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나타내고 있으며 한국 현대 시의 주요 작품 중 하나로 여겨진다. 

 

신 시인은 이후 노동운동가의 사랑을 담은 『가난한 사랑 노래』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는 민주화 운동에도 힘썼으며 계속해서 민중을 위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는 제19회 호암상 예술상, 제4회 시카다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의 예술성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우리대학은 신경림 시인과 같은 우수한 문학도를 발굴하고자 동국문학상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신 시인은 1987년 동국문학상 1회 수상자이다. 이후 조정래, 홍신선, 문정희 등 현대 문학을 빛낸 그의 후배들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현재는 제36회까지 대회가 이어지고 있으며 동국대학교 출신 문학인들이 시, 소설, 수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동국대 정문 앞에는 현재 그의 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시비 전면에는 『목계장터』가 새겨져 있다. 변치 않은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지를 시로 표현해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안겨 주었던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신 시인의 시비를 지나갈 때 잠시 멈춰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그를 기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인간 삶의 보편적인 고달픔을 신 시인만의 따뜻함으로 풀어낸 작품들은 그의 시비처럼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목계장터 中 한 구절>

 

 


웹진기자 : 홍혜인 (미디어커뮤니케이션전공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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