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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 역사 산책①] 혜정 손석재 보살과 백성욱 박사 그리고 부처님 성상의 비밀

등록일 2024.04.15. 작성자 허선이 조회 210

 

부처님 법으로 얽힌 사제의 인연
우리가 몰랐던 명진관 탄생의 이야기
팔정도 부처님 성상의 비밀

 

 

동국대학교 학생이라면 ‘명진관’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모습의 명진관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이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동국대학교는 1906년 불교계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이었던 명진학교로 시작하여 1946년 동국대학으로 승격, 그 후 지금의 남산 자락에 터를 잡게 된다. 필동캠퍼스에 들어선 1호 교사가 바로, 당시 본관 지금의 ‘명진관’이다. 명진관은 우리나라 건축계의 거장인 송민구(1920~2010) 건축가가 설계하였으며, 상징성과 건축미를 인정받아 2018년 국가등록문화재 제735호로 지정됐다. 명진관의 탄생, 나아가 우리대학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힘쓰신 혜정 손석재 보살과 백성욱 박사의 이야기로 ‘동국 역사 산책’ 그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동국대학교 상징 건물 명진관 (국가등록문화재 제735호)

▲ 동국대학교 상징 건물 명진관 (국가등록문화재 제735호)

 

명진관 건설 현장을 배경으로 찍은 학교 관계자 기념 사진(1955년). 가운데 모자를 손에 쥐고 있는 분이 백성욱 총장이다.

▲ 명진관 건설 현장을 배경으로 찍은 학교 관계자 기념 사진(1955년). 가운데 모자를 손에 쥐고 있는 분이 백성욱 총장이다.

 

 

 

탄생부터 비범했던 ‘혜정 손석재’와 제자 ‘백성욱’

상록원 뒤 계단을 따라 남산산책로 올라가다 보면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사리탑 하나가 나온다. 혜정 손석재 보살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 사리탑이 그것이다. 손 보살은 1882년 금강산 장안사 근처에서 태어났는데 그녀의 탄생은 처음부터 신비로웠다. 오체투지(온몸을 던져 부처님께 절을 함)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 그녀는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공부하다 50일 만에 숙명통이 열리고, 1930년 금강산 마하연에서 삭발 수계를 했다고 한다. 이런 그녀에게 특별한 제자가 한 명 있었는데, 동국대학 전 총장이자 내무부 장관까지 지낸 백성욱 박사다. 그는 1919년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경성불교중앙학림 졸업 후, 상해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유럽으로 건너가 1925년 한국인 최초로 독일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지식을 나누고자 대학 강단에 섰으며 많은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백 박사가 더 큰 불교적 깨달음을 얻고자 금강산 수행 길에 오르면서 그들의 인연은 시작됐다. 1928년 장안사에서 시작된 그들의 인연은 곧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나아가게 되는데, 손 보살의 지혜와 높은 경지에 이른 도를 느끼고 그녀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혜정 손석재 보살을 기억하기 위한 사리탑 (상록원 옆 계단 남산산책로 방향에 있다.)

▲ 혜정 손석재 보살을 기억하기 위한 사리탑 (상록원 옆 계단 남산산책로 방향에 있다.)

 

혜정 손석재 보살 (출처 : 백성욱 박사 현토 및 번역. [금강반야바라밀경] P422 )

▲ 혜정 손석재 보살 (출처 : 백성욱 박사 현토 및 번역. [금강반야바라밀경] P422 )

 

 

 

동국대 남산캠퍼스에 초석을 놓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힘들었던 시절인 1953년 백성욱 박사는 동국대학교 제2대 총장으로 취임한다. 그는 안정적인 교육 환경 조성을 위해 중구 필동 지금의 남산캠퍼스를 확장하고 대학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이런 그를 뒤에서 도운 이들 중 한분이 바로 혜정 손석재 보살이다. 그녀는 백 백사가 총장으로 취임하자 4,500만 원의 거액을 재단에 기부했다. 당신 쌀 한 가마의 가격이 980원이었다고 하니 엄청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그녀가 기부한 기부금은 장학재단 설립과 명진관을 비롯한 동국대의 주요 건물을 건설하는데 사용됐다.

 

늘 우리와 함께 해온 팔정도 부처님 성상

▲ 늘 우리와 함께 해온 팔정도 부처님 성상

 

 

 

팔정도 부처님 성상의 비밀

백성욱 총장은 대학에 큰 기부를 실천한 손 보살을 기념하기 위해 1953년 손석재 보살 동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4.19 혁명을 거치면서 동상은 크게 훼손됐다. 백성욱 총장은 창고에 있던 손 보살의 동상을 김영중(1926~2005) 작가를 통해 지금의 팔정도 불상으로 만들었다. 당시 38세였던 김영중 작가는 과감한 시도를 하게 된다. 앞으로 걸어 나가는 역동적인 불상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시대적 감각을 앞서려는 그의 시도는 여러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젊은 작가는 포기하지 않고 작은 반란을 선택한다. 불상을 자세히 보면 한쪽 어깨가 살짝 기울고 한쪽 무릎이 들린 상태다. 스쳐 지나가면 눈치 챌 수 없을 정도지만 이 글을 읽고 본다면 살짝 그 느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동국대학교를 다니는 우리들에게는 생소한 두 분의 이야기를 통해 팔정도 부처님의 탄생과 명진관 건설 등 지금의 캠퍼스가 있기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동국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우리 동국대학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과 그들의 이야기가 함께 하는 곳이다. 홍보실 웹진기자들은 앞으로도 동국대학교와 동국인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웹진기자 : 홍혜인(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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