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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 교수에서 시인으로> AI 융합대 이용규 교수 퇴임 인터뷰

등록일 2024.03.05. 작성자 허선이 조회 1276

 

“재직 중 제 강의 수강생 수를 헤아려보니 합계 1만 명이 넘더군요.” 후학 양성과 모교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지난 27년간 동국 공학 발전에 기여한 이용규 교수의 퇴임식이 지난 2월 27일 중강당에서 열렸다. 전자거래학술상 수상, 동국학술상 수상, 발명 유공자로 근정포장 수상 등 이제까지 수많은 경력을 남긴 그는 이공계 교수로서는 이례적으로 『문학과 창작』으로 등단해 예술인으로서의 두 번째 삶을 준비 중이다. 

축하의 인사를 나누며 오랫동안 공학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그와 인터뷰를 나누었다.

 

 

 

AI 융합대 이용규 명예교수

▲ AI 융합대 이용규 명예교수

 

 

 

Q1. 안녕하세요, 이용규 교수님. 지난 27년간 매진해 오셨던 교육자로서의 생활을 마무리하시게 되었는데, 정년퇴임하시는 소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년퇴임을 위해서는 우선 건강을 유지해야 하고, 교육과 연구에 대한 열정을 끝까지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정년퇴임은 제게 기쁜 일입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동국대 구성원들의 많은 도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그동안 함께 생활한 컴퓨터공학 전공 교수님들과, 제가 학교보직을 수행할 때 동고동락한 연구처, 산학협력단, 창업지원단의 실팀장님, 그리고 직원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Q2. 교수님께서는 우리대학 재직 중 IT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 성과를 이뤄내셨습니다. 알려진 연구 성과만큼이나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연구와 관련돼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떠오르는 일을 말씀해주세요.

무엇보다 97년 전자불전연구소를 한보광 스님, 홍영식 교수님, 이금석 교수님 등과 함께 설립해 18년간 간사를 맡아서 한글대장경, 한국불교전서 등 웹 검색 시스템 개발 사업을 수행했던 일이 특별히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에 제가 조사해보니 다른 한자문화권 국가들에서 이미 우리보다 앞서 한문 불전 전산화 사업을 시작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선행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웹에 연동되지 않는 독자적인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웹 검색을 목표로 당시 표준화 진행 중이던 국제표준 문자코드인 유니코드와 웹의 XML 마크업언어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 개발에 몰두하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이것이 세계 최초의 한문 불전 웹 검색 시스템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상용 문서편집기와 DBMS가 유니코드와 XML을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문서편집기와 데이터베이스 입력기 등을 일일이 개발해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어플리케이션들이 웹에서 작동하는 것은 기본이 됐고 웹의 문서처리에서도 XML의 사용이 보편화 됐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고된 작업이었지만 그만큼의 노력 덕분에 당시 우리의 불전 검색 시스템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보람차기도 하며, 그때 과제를 함께 수행했던 연구원과 연구조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Q3. 교수님께서 2015년 산학협력단장으로 취임한 이래로 ▲SW중심대학 선정 ▲사회맞춤형 산학협력선도대학(LINC+)육성사업 선정 ▲창업 선도대학 8년 연속 선정 등 산학협력단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끌어내셨는데요. 당시 교수님께서 생각하셨던 산학협력단의 비전과 성장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제가 2015년부터 4년간 연구처와 산학협력단을 맡으면서 나중에는 창업지원단까지 함께 맡았습니다. 업무량은 무척 많았지만, 여러 업무를 총괄해 맡다 보니 덕분에 연구와 산학협력 제반의 업무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대학이 연구중심대학으로 안착하기 위해서 연구기획 기능 강화. 연구지원 제도개선, 간접비의 효과적 활용 방안 수립, 산학협력단 직원들의 안정적인 근무환경 마련 등 연구지원 체제를 먼저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외부연구수주를 위해서는 우선 교내연구가 활성화 돼야 한다는 판단으로, 동국GRANT 사업을 최초로 실시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국가 연구동향에 맞춰 융합 연구단을 비롯한 교내 사업단들을 선정해 집중 지원했는데 사전 연구 수행 결과로 외부 과제를 수주하는 체제가 갖춰짐으로써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동국GRANT 사업은 현재도 계속 실시돼 좋은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Q4. 산학협력단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이전 질문에 나열된 사업들 외에도 뚜렷한 성과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2017년에는 인문사회 분야에서 대학중점연구소지원사업, 토대연구지원사업, 사회과학연구 지원사업 등 대형 국책사업에서 동시에 7개 사업이 선정(7관왕)돼 63억 2천만 원을 지원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는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에서 기초의과학연구센터(MRC)와 융합연구센터(CRC) 등 동시에 2개 센터가 선정돼 무려 200억 원에 가까운 연구비를 확보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2016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후변화대응기술개발사업, 2017년 한국연구재단 여성공학인재양성(WE-UP)사업, 2017년 서울시 캠퍼스타운 조성사업, 2018년 한국연구재단 대학중점연구소지원사업(북한학) 등에 선정되는 등 동국연구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그리고 재임 중 산학협력단이 우수연구기관으로 두 차례 선정돼 미래창조과학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장관 기관표창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앞에서 열거한 성과들은 탁월한 연구자 교수님들이 학교에 있었고, 헌신적인 실팀장님들과 직원 선생님들이 조직에 근무했었고, 또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Q5. 오랜 재직 기간만큼 학과 교수로서 기억나는 점도 많으실 것 같은데요. 학과와 관련해 가장 보람찼거나 기억에 남는 일을 말씀해주세요.

학교에서 보직으로 인정되기 전에 제가 컴퓨터공학과 PD교수를 맡아 2004년 서울시 소재 대학 중 최초로 컴퓨터공학교육인증을 획득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은 공학교육인증이 확산돼 많은 대학들이 컴퓨터공학교육인증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컴퓨터공학과 주임교수를 맡고 있던 2006년에는 정보통신부 대학IT전공역량강화사업의 소프트웨어개발 부문에 지원해 컴퓨터공학과가 전국 1위의 최우수 평가로 3억 원의 정부지원금을 지원받은 것을 시작으로, 4년간 대응자금까지 총 11억여 원을 지원받게 됐던 일도 아주 보람찬 일이었습니다.

 

 

 

Q6. 컴퓨터공학과 장학회 설립 및 운영에도 기여했다고 들었습니다. 장학회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2005년이 되면서 컴퓨터공학과 총동문회에서 장학회 설립을 본격적으로 논의했습니다. 처음에는 기금을 모아 그 수익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논의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학교에 알아보니 기금을 갖고 있는 학과들은 있었지만 수익이 부족해 장학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기금을 모으는 대신 동문들이 매년 10만원씩 소액기부를 해 곧바로 다음해 지급될 수 있는 방식을 제안했고 당시 생소했던 이 방식이 큰 호응을 얻게 돼 제가 장학회 초대 총무 등의 역할을 맡는 동안 성공적인 장학회 운영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제가 장학회에 관여하는 동안 2006년부터 2018년까지 13년간 26회에 걸쳐 학생 84명에게 1억 2,6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이는 당시 김승찬 동창회장님과 김정숙 교수 등이 함께 수고해주신 덕분입니다. 
2019년 장학회 업무를 후임자들에게 인계한 이후에도 현재까지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문 여러분들의 장학회에 대한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Q7. 2019년 이공계 교수로서는 이례적으로 『문학과 창작』으로 등단해 시집 『너는 누구냐』를 발간하셨습니다. 공학자로서 가능한 상상력으로 재치 있는 문장들을 써내 독자적인 시세계를 보여주셨는데요. 또한 불교적 상상력과 깨우침이 담긴 시편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시집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궁금합니다.

정년을 앞두고 문득 먼 하늘의 별 같던 시가 강렬한 빛으로 제 안에 잠자던 시인을 깨웠습니다. 시인으로서의 제 이름은 이용하입니다. 지금까지의 저로부터 가장 멀리에 있던 문학을 새로 시작하게 됐기 때문에 새 이름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에 있어서 일종의 이방인이기 때문에 그런 시각이 자연스럽게 시에 반영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기존과는 다른 관점으로 오브제를 보려고 노력합니다. 제 시집에 불교적 사유의 시편들이 많은 것은 아무래도 제 사유의 바탕이 불교이기도 하지만, 시인은 불교적 사유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독자들이 상상력의 예술체험을 함께 경험했으면 합니다. 앞으로 좋은 시를 써서 내년까지는 제2시집을 낼 계획입니다.

 

 

 

지난 2021년 발간한 시집 너는 누구냐

▲ 지난 2021년 발간한 시집 <너는 누구냐>

 

 

 

Q8. 끝으로 정년퇴임 후에 하고 싶으셨던 일이나 다른 계획이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지금까지보다는 시간 여유가 많을 것이니 그동안 미뤘던 여행도 다녀오고, 도서관에 가 그동안 못 읽은 좋은 책들을 읽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컴퓨터과학의 동향에는 계속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뒤늦게 시인의 길을 나섰지만 앞으로 더욱 노력해 좋은 시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동국대의 선수이자 열렬한 팬이었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동국대를 응원하겠습니다.

 

 

웹진기자 : 이태건 (국어국문문예창작학과)

 

 

악기목樂器木 / 이용하

알프스 가문비나무 군락지에 갔다 스트라디바리의 7대代 제자라는 마르티니 씨가 바이올린 제작용 나무를 찾고 있었다 여기저기 잘 자란 나무들이 보였다 그는 내가 고른 나무가 아닌 다른 나무로 가서 둥치를 안고는 가만히 두드려보는 것이었다

나무마다 무늬가 내는 음이 다르다면서 메마른 응달에서 300년 이상을 살아낸 나무라야 제대로 된 소리를 갖는다고 했다 86세인 그는 귀가 어두워도 나뭇결에 배어든 바람과 물과 그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그것이 스트라디바리로부터 대대로 전승된 비법이라고 했다

그와 작별할 때 가문비나무에 했던 것처럼 나를 포옹하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와 헤어지고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내 등이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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