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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불교학술원 동국역경원, 「독송본 인왕호국경」 출간

등록일 2022.09.15. 작성자 관리자 조회 413

독송본 인왕호국경 출간

 

지구촌 전체를 뒤덮은 질병과 자연재해, 전쟁의 시대에 우리는 왜 「인왕호국경」을 독송해야 하는가?

“정법이 멸할 때는 괴이한 재난들이 연달아 일어나니, 국가와 자신을 재난으로부터 보호하려면 「인왕호국경」을 독송하라.”

동국대 불교학술원 동국역경원(원장 혜거 스님)에서는 「독송본 인왕호국경」을 출간하였다. 불교학술원의 백진순 교수가 한글 독음과 한글 번역 작업을 진행했고, 동국역경원장 혜거 스님이 감수 작업을 맡았다.

「독송본 인왕호국경」은 구마라집鳩摩羅什 역譯 「불설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의 한문 원문을 한글 독음으로 독송할 수도 있고, 한글 번역본으로도 독송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누구나 쉽게 독송할 수 있는 독송본의 역할은 물론, 한문 원문에 주석을 단 원문교감본도 함께 싣고 있어 연구서로서의 가치도 함께 지닌다.

「인왕호국경」의 원제명은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이다. 특히 이 경의 「호국품」에서는 정법이 멸하려 할 때 기상이변, 외적의 침입, 괴이한 질병 등과 같은 온갖 재난들이 창궐한다면서, 이러한 재난들로부터 국토를 수호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총 120여 차례 설행된 인왕백고좌仁王百高座 법회이다.

신라에서는 511년(진흥왕 12)에 처음 인왕백고좌 법회가 설행되었다. 이 법회는 국왕이 주체가 되어, 법식에 따라서 백 개의 불상, 백 개의 보살상, 백 개의 아라한상 등 일곱 가지 복전을 구비하고, 백 개의 등과 향과 꽃 등으로 공양하면서, 백 명의 법사에게 청하여 하루 두 때에 「인왕호국경」을 독송하는 것이었다. 이 백고좌 법회는 예로부터 국가의 태평과 백성의 안녕을 기하고 또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가와 자신을 보호하는 비법으로 수용되어 왔다.

고려 시기까지의 서산西山이 조선시대에 인왕산仁王山이 된 까닭은?

유교국가인 조선에 들어 인왕백고좌 법회는 설행되지 못했지만, 인왕산에 세워진 인왕사仁王寺에서 「인왕호국경」을 독송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왕산은 고려 시기까지는 서산西山으로 불렸지만, 조선 초 무학 대사가 이곳에 인왕사를 세운 이후 명칭이 인왕산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경에서 일러준 대로, 왕의 처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 경을 안치하고 독송함으로써 임금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사는 1503년(연산군 9) 철거되었고, 이후 「인왕호국경」 독송의 전통 또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인왕호국경」의 독송 전통이 끊어지고 대략 500년이 지난 요즈음 전 세계는 코로나19와 같은 질병이 만연하고, 기상이변과 기후재앙 등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러한 재난들로 인해 다시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등이 초래되면서 인류는 막대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이러한 대재난의 시기를 맞이하여 「인왕호국경」에서 설한 부처님의 비장하고 준엄한 경고는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정법이 파괴되면 이것이 나라와 자기를 망치는 인연이 되어 온갖 재난으로 되돌아오니, 정법을 수호하는 것이야말로 국토와 자신을 수호하는 올바른 길이다.”

불교도들은 스스로 정법을 파괴하는 인연을 짓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면서, 또한 이웃들의 온갖 고난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껴야 할 때이다. 동국역경원에서는 한국의 불교도들이 함께 이 「독송본 인왕호국경」을 수지 독송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모든 대중까지를 재난에서 건져내는 큰 불사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독송본을 만들게 되었으니, 사부대중의 독송 동참을 기원한다.

* 표지 그림 :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제2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