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코로나 시대의 양생법
일설에 의하면 코로나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백신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그 말은 절망의 소리로 들린다. 백신이 나오면 코로나는 종식되겠지. 하지만 다른 변종 바이러스가 나타나 다시 우릴 괴롭힐 테니 백신도 일시적일 뿐이다. 우린 또 마스크를 쓰고 새로운 바이러스와 싸움을 치러야 한다. 영원한 치료제란 애당초 없다. 이 절망스럽고 막막한 싸움.
인류의 생존을 바이러스와 인간의 싸움으로 보는 건 과학자들의 견해다. 인류가 멸망한다면 핵전쟁이나 환경파괴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중 유력한 하나가 바이러스로 전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그때마다 살아남았고 적자생존 진화론에 의하면 살아남은 인류는 강해졌다. 강한 종자라서 역설적으로 바이러스도 강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서로 누가 더 강한 가에 대한 경쟁적 생명보존의 원리가 작용한다.
코로나 이후 새로운 생존법이 생겼다면 그건 자연적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다. 일정한 사회적 거리를 두다보니 개인적 성찰이 더욱 강해진 게 사실. 생존법은 곧 ‘양생법(養生法)’이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를 보면 세 남녀의 사랑법이 흥미롭다. 주인공 혜원은 사귀던 애인이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어 그와 거리를 둔다. 자신이 남자친구를 향해 베푼 사랑만큼 그에게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자존심의 상처도 원인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사랑이란 것이 남을 귀찮게 하는 것이 되어선 또한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다리기로 한다.
시골에서 자연생활을 해봤고 다시 귀농했을 때 새삼 생명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하면서 혜원은 모든 건 다 때를 기다려야 함을 알았다. 사랑은 적극적으로 베풀기만 해서 되는 건 아니다. 상대방이 그 베풂을 소중히 받아들이는 때가 되어야 비로소 베풂의 의미가 생기니까. 그전까지 그 행위들은 그저 귀찮음 정도일 뿐이 아닌가.
도시의 직장생활이 상명하복의 무의미한 기계적 명령의 반복임에 싫증 난 재호는 청년농부로 돌아와 과수원을 경영한다. 잠시 와있는 거라고 말하는 친구 혜원을 바라보며 사랑 고백을 쉽게 하지 못한다. 멀리서 그저 바라보며 혜원이 아쉬워할 만한 것들을 베풀면서 자신의 사랑을 알아주길 바란다.
재호를 바라보며 그 둘 사이에 비껴 서 있는 은숙 역시 기다리기는 마찬가지. 그녀의 눈에는 혜원을 바라보는 재호의 모습이 보이고 그래서 더욱더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안다.
얼마 전까지 이런 바라보기 사랑은 비판받아 마땅했다.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란 생각이 미덕이었고 서로가 좋아하는 사랑법이었다. 하지만 소위 ‘들이대기’의 미학은 이제 아름답지 않아졌다. 언택트(비대면) 시대에 마스크를 하고 서로의 눈만을 마주치며 사랑을 해야 하는 시대에 더 이상 미덕을 운운해선 안 된다. 대신 바라보기와 기다리기의 인내가 새로이 아름다운 덕목으로 등장했다.
식물과 동물의 자연 이치에서 바라본 영화를 통해 코로나 시대 사랑의 양생법을 깨우치게 된다. 혜원의 엄마가 그걸 딸에게 가르쳐 주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면 식물이 자랄 동안 오랜 시간 기다리는 미덕이 필요하다고. 자연을 통해 먹고 건강해지고 편해지는 이치를 스스로 깨우쳐 백신 없이도 온갖 병을 이길 수 있는 인간 스스로의 자연치유력을 엄마가 가르쳐 주었다.
지금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기다림이고 느림이고 스스로 안달하지 않기다. 자연이 우리에게 그걸 가르치고 우린 새삼스레 자연의 아이들임을 체감해 가는 계절이다.
정재형 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