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로 둥근 세상을 만들다
‘배리어프리(barrier free)’란 장벽을 뜻하는 배리어(barrier)와 벗어남을 의미하는 프리(free)의 합성어로, 장애인과 노인 등 신체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이동하거나 어떤 시설을 이용하는 데 방해가 되는 물리·제도·심리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이다. 안전 손잡이가 부착된 완만한 경사로와 자동문을 설치하고, 수어 통역을 제공하는 것은 모두 배리어프리의 예다. 우리대학 명진관과 학생회관 자판기에도 ‘점자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다. 모두 더불어 살아가는 둥근 세상을 꿈꾸는 이민성 학우가 직접 손으로 만든 작품이다.
1. 우리대학 교내 자판기에 점자 스티커를 제작해서 부착한 계기와 목표가 궁금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점자 스티커를 제작해서 부착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닙니다. 먼저 등굣길에 오르며 ‘높은 언덕으로 유명한 우리대학을 휠체어를 탄 학생이 다닐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고, 답을 구해보고자 직접 휠체어를 타고 충무로역에서 팔정도까지 올라가는 활동을 해봤습니다. 올라갈 순 있었지만 들어가지 못하는 건물과 강의실이 너무 많았는데요. 휠체어를 탄 학생들이 매일 이런 길을 통학하는 건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우리대학 장애인권센터에 학교에 다니고 있는 장애인 학생이 겪는 어려움을 문의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우리대학 장애인권센터에 재학 중인 장애인 학생 수를 여쭤봤습니다. 장애인 학생 수는 전체 학생 수의 0.09%에 불과한 17명이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 대비 장애 인구가 5%인 것에 비하면 너무 적은 수치라고 생각했어요. 이때부터 우리대학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변화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는 장애인 학생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동국대에서 배리어프리를 위한 변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휠체어를 타고 등교하는 활동을 통해 교내에 경사로와 승강기를 설치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사로와 승강기를 만들기에는 현실적·금전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까 고민하던 중 제가 코로나19에 확진이 되었고, 자가격리 기간에 점자를 배웠습니다. 점자 제작에 드는 비용은 아주 비싸지 않고, 제가 충분히 지속할 수 있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점자 자판기 제작’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 점자 스티커를 교내 어디에 배치하셨는지, 앞으로 교내외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올해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4월 19일부터 명진관과 학생회관에 점자 스티커를 제작해 부착했습니다. 학내 여러 건물 중 두 건물에 부착한 이유는 제가 자주 다니면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자판기 음료 종류와 가격이 생각보다 자주 변동되더라고요. 제가 현재 휴학 상태라 자판기를 자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인데요. 앞으로는 가변성이 낮은 건물, 강의실, 화장실을 위주로 점자 스티커를 부착할 예정입니다.
3. 점자 스티커 제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교내 부착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을까요?
교내 모든 건물의 최저층에 있는 자판기에 점자 스티커를 부착하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강의동 전체 자판기를 조사했습니다.
점자 안내문은 휴대용 점자 인쇄기를 가지고 만드는데요. 점자를 찍어내는 틀에 일일이 핀을 집어넣고 스티커를 올린 뒤 압축을 하는 ‘수작업’으로 제작됩니다. 음료 한 품목당 ▲상표명 ▲가격 ▲용기 재질 (캔/페트병)까지 세 가지 스티커를 제작해야 하다 보니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려서 아직은 명진관과 학생회관 두 개까지 부착한 상황입니다.
부착 전에 자판기를 관리하시는 교내 시설팀과 생활협동조합에 미리 연락을 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시고 도움을 주셔서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4. 이민성 학우님은 제5회 대한민국 장애 인식 개선 콘텐츠 공모전에서 <둥글고 둥글게>라는 작품으로 장애인단체장상을 수상했습니다. 영상 속에서 학우님은 휠체어를 이용해 대중교통과 경사로를 거쳐 캠퍼스에 도착하셨는데요. 어떤 목표를 갖고 영상을 기획하셨는지, 촬영 과정에서 느낀 점은 어떤 것이었는지, 더 많은 사람이 공공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서 사회의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대학 백지윤(중어중문17), 김지연(영화영상16) 학우와 함께 기획한 <둥글고 둥글게>는 처음부터 영상 촬영을 목적으로 진행한 것은 아니었고, 비장애인 세 명이 직접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보며 평소에 인지하지 못하거나 드러나지 않는 사회의 차별을 조사하는 프로젝트였어요. 하지만 이런 활동 과정이 더 많은 사람에게 공유된다면, 여기에 영감을 얻어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시도들이 많아질 것으로 생각해서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영상은 ‘대한민국 장애 인식 개선 콘텐츠’ 외에도 ‘경상북도 인권 작품 공모전’, ‘서울 디자인 재단의 UD(Universial Design, 범용 디자인) 라이프스타일 공모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반짝이는 예술생각’에서 수상을 했는데요. 더 많은 이들에게 차별 인식 개선을 홍보하고자 했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 뿌듯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동국대에 오를 때 손에 물집이 많이 생겼어요. 동국대 통학로 중 가장 완만한 길을 찾아 후문을 택했는데도 너무 가파르니까 바퀴가 계속 헛돌고, 휠체어가 아래로 밀려서 손을 많이 써야 했거든요. 거리는 불친절했지만, 학우분들은 따뜻했습니다. 잘 모르는 분들이었지만 먼저 다가와서 도움이 필요한지를 물어봐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무턱대고 도움을 주시거나 지나치는 것이 아닌 도움이 필요한지를 먼저 물어봐 주셔서 불친절한 거리와 대비되는 따뜻한 사람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희가 목표하는 둥근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배리어프리’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소외와 차별이 매우 많거든요. ‘매일 오르는 동국대 등굣길이 누군가에겐 쉽지 않은 길이구나’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인식이 점차 주변으로 확산한다면 사회와 제도는 사람들의 생각과 함께 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두 함께 더 나은 둥근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 사람도 쉽게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5. 이민성 학우님은 예술의 문턱을 낮추고자 예술관이 아닌 곳에서의 전시를 기획하는 ‘스튜디오 컴컴’에서 기획팀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습니다. 2018년에 우리대학 인근 거리 전체를 전시관으로 이용하며 침체한 인쇄 골목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서울은 미술관: 재생지(地)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는데요. 영상과 전시 같은 일상의 예술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혹시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사회 참여 예술이 있을까요?
저는 현재 청소년 창의성을 연구하는 문화재단에서 활동을 이어가며 장애인 청소년을 만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모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도를 영상과 글로 기록한 뒤, 짧은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을 만들려고 합니다. 이외에도 청소년의 교육과 복지 증진을 위한 사회 공헌 사업이나 국제 개발 협력 사업에 계속 참여하고 싶어요. 제가 어느 자리에 있건 그 자리에서 만들 수 있는 변화를 꾸준히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6. 이민성 학우님이 생각하는 학생 복지란 어떤 것이며, 앞으로 우리대학에서 어떤 활동을 이어가고 싶나요?
동국대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상대적 소수성으로 차별받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장애인과 소수성을 지닌 학생들도 다른 학교 구성원들만큼 최소한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저도 노력하겠지만, 학교에서 지속해서 신경을 쓰고 노력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대학은 언덕이 높으니까 이동 지원 차량을 지원하거나, 휠체어를 사용하는 학생이 듣는 수업의 강의실은 승강기가 있거나 1층으로 배치하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할 것 같아요. 이외에도 높낮이 조절이 되는 책상이나 학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재를 더 마련해주시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다니기 좋은 학교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장애인식 개선과 재고를 위해서 여러 워크숍과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했는데요. 내년 장애인의 날에는 이런 경험을 학우분들과 나눌 수 있도록 교내에서 소소한 프로젝트를 준비해볼까 합니다. 저는 ‘극예술연구회’라는 연극 중앙 동아리에도 소속되어 있고, 최근 수어를 배우고 있는데요. 공연에서 수어 통역을 해볼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도 있습니다.
7. 우리대학 구성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장애인 승강기를 지금은 모든 사람이 이용하고 있듯이 ‘배리어프리를 위한 설비들이 결국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해요. 버스 하차벨에 손이 닿지 않는 어린이, 승강기가 없어서 긴 계단을 어렵게 내려가는 어르신들을 떠올려보세요. 이런 어려움들은 저희가 예전에 겪었을지도, 혹은 나중에 겪게 될지도 모르는 어려움이거든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을 나누기보다 모두 같이 더 편리하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한 ‘배리어프리’에 대해 조금 더 많은 관심을 두시길 바랍니다. 저도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글 : 웹진기자 중어중문학과 18 장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