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배럴통이라 불리는 배가 볼록 나온 나무통은 오랜 세월동안 물건을 보관하거나 옮기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요즘에도 와인이나 맥주 같은 주류를 담아 숙성시키거나 보관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20세기 중반까지 항만에서는 화물을 배럴통에 담아 배에 싣는 모습이 일상적이었고, 이 나무통을 만드는 기술자나 장인을 “쿠퍼cooper”라고 불렀다. “쿠퍼”는 상당히 인정받는 전문직이었고 소득도 높은 편이었다. 당시에는 화물을 운송하는데 많은 비용이 필요했고, 물건을 담는 나무통의 내구성도 충분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말콤 맥린이라는 미국인이 컨테이너를 발명하며 대량의 화물을 한 번에 운반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후 항만에서 쿠퍼라는 직업은 사라졌고, 역사속의 장인으로 남게 되었다. 이는 커다란 혁명이었고 항만의 기중기를 운전하는 사람, 컨테이너를 옮기는 화물차 기사, 이를 싣고 바다를 건너는 컨테이너 화물선 종사자 등 다른 분야의 직업이 수없이 생겨났다. 불과 1956년에 벌어진 일이다.
지난 2016년,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Klous Schwab)회장은 “4차 산업혁명은 이미 도래하였다”며 첫 화두를 던졌다. 슈밥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이 속도, 범위, 체제에 대한 충격에서 3차 산업혁명과 확연히 다르다고 강조하며, 앞선 산업혁명들처럼 선형적인 변화가 아니라 차원이 달라지는 지각변동수준의 변화라고 언급했다. 올해 다보스포럼은 이례적으로 3년 만에 같은 주제인 ‘4.0: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의 세계화 구조’를 내세웠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4차 산업혁명은 무엇일까?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산업생태계를 바꾸고, 그것이 인간이 영위하는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때 산업혁명이라고 부른다.
지난 2016년 구글(Google)의 딥마인드(DeepMind Technologies Limited)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대한민국의 바둑천재 이세돌 기사의 대결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바 있다. 5전 4승 1패로 알파고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이세돌 기사와의 대국을 전후로 판 후이, 커제 등 세계 정상의 기사들과의 60여 차례 대국에서 ‘알파고(AlphaGo)’는 전승을 거뒀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복잡한 바둑의 영역에서도 스스로 학습해 최고의 바둑 공식을 만들어 내며 인간을 뛰어넘은 것이다.
이렇듯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블록체인, 모바일 기술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과 3D 프린팅, 로봇공학, 생명공학, 나노기술 등 여러 분야의 신기술이 결합하여 경제·사회 전반에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 이를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hyperconnectivity)과 초지능(superintelligence)의 특징을 보이며 기존의 산업혁명에 비해 더 넓은 범위(scope)에 더 빠른 속도(velocity)로 크게 영향(impact)을 미친다.
다보스포럼은 단순한 700만개의 직업이 사라지고 200만개의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광범위한 4차 산업혁명 변화의 물결 속에서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새롭게 등장하는 직업은 무엇일까? 기계나 로봇이 대신할 수 있는 단순노동직, 운송업, 제조업 등의 직업은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다. 반면, 인간관계의 조정이나 가치를 다루는 일, 창작을 필요로 하는 일, 지능형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인공지능 전문가 등의 직업이 생겨날 것이다. 나아가 윤리기술전문가, 생태복원전문가, 가상공간 디자이너, 예측 수리 엔지니어, 오감 제어 전문가와 같은 새롭고 생소한 미래직업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현재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의 65%는 아직 생기지 않은 직업을 갖고 일하게 될 것이라니 그 변화의 폭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이에 발맞춰 교육계에서도 이미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인 융합이 학문 간에도 나타나며 각 대학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융합학과가 개설되고 있다. 동국대의 경우 경주캠퍼스의 경영학부를 융합학부로 전환했고, 인문콘텐츠학부, 글로벌어문학부 등을 신설하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정부도 융합학문이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교육부는 ‘2019년 LINC+4차 산업혁명 혁신선도 대학’ 18개교를 선정했다. 이 사업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융합지식과 4C 능력(비판적 사고력, 소통능력, 창의력, 협업능력)을 갖춘 문제해결형 인재를 양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동국대는 ‘산학협력 고도화형’으로 선정되어 10억 원의 사업비를 확보하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우선 학과별, 전공별 칸막이를 더 낮출 필요가 있다. 정해진 전공과정에 맞춰 학위를 받는 것이 아닌 융합전공제, 집중이수제 등 유연한 학사제도의 도입도 필요하다. 또한 융합학과의 신설과 함께 기존학과를 시대에 맞도록 변화시키는 노력도 병행해야한다.
캠퍼스에도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캠퍼스의 역할을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따라 전환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전통적인 캠퍼스 중심의 대학관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재정적 한계, 학생충원의 한계, 교육의 질 제고의 한계, 그리고 지속가능한 성장의 한계 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새로운 대학 플랫폼이 형성될 것이다.
교수의 역할과 기능도 시대의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교수의 전공영역과 학문적 독립성은 유지하면서도 융합적 학문체제로 전환을 이끌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융합교육 과정으로의 변화를 인식하고 학습의 촉매자, 디자이너, 카운슬러, 파트너와 같은 교수의 새로운 역할의 수행이 주어질 것이다.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대학은 그 시대마다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학문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분명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 많은 것이 변화할 것이다. 하지만 대학교육의 본질인 학문의 연구와 인재의 양성은 변함없을 것이다.
분명 4차 산업혁명은 인류에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빛에 가려진 그림자도 살펴야 한다. ‘초연결사회의 도덕성과 정체성 갈등문제’, ‘인간의 기계화와 AI로봇의 인간화 문제’, ‘정보와 자원의 독점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심화’ 등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유형의 부작용들이 나타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부작용을 극복하는 길은 대학에서 출발해야 한다. 세상을 더욱 풍요롭고 이롭게 발전시키는 길에 대학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 걸음 앞선 준비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동국대학교를 기대해 본다.

송언석 국회의원
■ 학력
ㆍ서울대학교 법학과 학사
ㆍ서울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학사
ㆍ뉴욕 주립 대학교 버팔로 대학원 경제학 석사
ㆍ뉴욕 주립 대학교 버팔로 대학원 경제학 박사
■ 경력
ㆍ제29회 행정고시 합격
ㆍ2015.10~2017.06 : 기획재정부 제2차관
ㆍ국민대학교 특임교수
ㆍ2018.06~ : 제20대 국회의원(경북 김천시, 자유한국당)
ㆍ2019.02~ :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ㆍ2018.12~ : 자유한국당 원내부대표
[동대신문 16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