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푸는 세상의 문제
인터넷 게시판에는〈인류 10대 발명〉이라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냉장고’에서 ‘나침반’, ‘바퀴’와 같이 흔히 우리가 지금도 쓰고 있는 물건들도 있지만 ‘민주주의’나 ‘자아의 개념’, ‘결혼’에 이르는 관념이나 관습까지도 물망에 오릅니다.
발명이라는 것의 정의는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만드는 고안이라고 할 수 있으니 추상적인 사고나 물질적인 개선이 켜켜이 쌓여 인류의 문명을 구성해 온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의사이자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 박사는 2010년 TED에서 그의 유명한 강연〈한스 로슬링과 마법의 세탁기 - Hans Rosling and the magic washing machine〉을 들려줍니다. 박사가 어릴 적 세탁기가 처음 집에 왔을 때 그의 할머니와 엄마는 그간의 고된 노동이 사라지는 감격에 기뻐하셨고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되며 책을 읽고 고민하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물을 길어오고 불을 때며 수많은 시간의 노동으로 이루어지던 일을 도와주는 세탁기의 발명은 단순히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본인과 아이의 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세대를 이어 더 큰 변화를 이끌게 해 준다는 깨달음을 강연은 일깨워 줍니다.
언어와 문자라는 상징체계의 발명으로 사피엔스 무리는 먼저 살아온 선배들의 삶을 기록하여 시행착오를 그 다음 세대에서 반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진화하였습니다. 누적된 경험과 유추된 논리는 거인의 어깨를 딛고 더 높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의 축까지 결합된 집단 지성을 형성하게 해 주었습니다.
지능의 도구로 컴퓨터와 정보의 연결망 네트워크가 결합되기 시작하며 지수의 속도로 지식이 축적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찰스 배비지의 차분기관(difference engine)으로 시점을 보아도 200년 이내, 존 에커트와 존 모클리의 에니악(ENIAC: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을 기준으로 한다면 불과 70년 남짓의 기간 동안 이루어진 것입니다. 인터넷의 역사 또한 1960년 이후에 시작된 후 1993년 모자이크 웹 브라우저를 통해 대중화 되었기에 3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2007년 아이폰을 필두로 한 스마트폰의 발명은 개인이 항상 정보를 획득함과 동시에 남길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주었고, 4G에서 5G로 진화하는 네트워크와 결합되며 정보의 대량 생산과 소비가 현실화되기 시작한 것도 10년 남짓의 기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점점 더 혁신의 환경과 도구의 발명이 빨라지며 빅 데이터라 부르는 거대한 자료의 집합은 책 한권이 엄청난 금액으로 거래되던 불과 수백년 전과 비교해 보면 상상도 못 할 만큼의 크기로 매일같이 누적되고 있습니다. 이의 전문적 해석의 기법이 연구되던 중 고안된〈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의 방법으로 우리가 힘들게 씨름하던 문제들 중, 기존의 방법과 비교해 보았을 때 전대미문의 효율이 발현되는 예제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수초 안에 인식하여 범죄자를 가려내는 방법에서부터 지문이나 음성을 이용하여 보안을 유지하는 일, 말로 작동하는 전자기기나 자동 통번역 시스템의 구현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불가능하였거나 많은 투자를 통해 전문가를 양성해오던 일들이 인공의 지능을 통해 가능해 질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희망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과 식견을 갖춘 전문성의 협력이 요구됩니다. 개인 간 정보의 흐름이 가속화되며 일어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성에 대해서는 네트워크 분석과 사회학의 이론이 결합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유전체 정보와 질병의 예방에 대한 부분은 생물학과 의학, 그리고 정보 처리에 관한 연구가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 뇌의 신호와 인간의 인지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전자공학과 컴퓨터 과학이 심리학과 인지과학과 함께 논의해야 합니다. 이처럼 예전의 문제를 풀기 위해 정의된 학문과 연구의 영역은 더 복잡하고 새로운 문제를 풀기 위해서 다시 해체되거나 모여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문제를 풀기 위해서 각자의 일을 새로이 정의하고 각자의 원(願)을 세우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캐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마이닝 마인즈(Mining Minds)〉라 정의하고 컴퓨터 과학 뿐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함께 연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관점과 고민이 더 낳은 해결책을 얻게 해 줄 뿐 아니라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작용에 대해 미리 고민하고 배려하는 일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때로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정보 공유의 남용으로 인한 사생활의 침해나 시민 권리의 불합리한 제한, 빠른 기술발달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나 도덕적 판단이 요구되는 사안에 대해서 설명되지 못한 채 차별받을 수 있는 인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이성적 논리적 합의가 필요한 일들이 산적할 것이라 예상됩니다. 이를 위해 철학이나 윤리학, 법학이나 정치학과 같은 다양한 학문들의 관점과 누적된 연구가 큰 도움이 될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2017년 고인이 된 한스 로슬링 박사는 유작으로 “팩트풀니스 (Factfulness)”를 남기며 우리 인류의 삶이 나아지고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의 세탁기 강연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끝납니다.
"산업화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철소에 감사하고, 발전소에 감사할 따름이죠. 우리에게 책 읽을 시간을 준 화학 가공 산업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프로메테우스의 불과 같이 기술은 우리에게 큰 기회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그 불로 체온을 보존하고 음식을 익히며 아이들을 돌볼 것인가, 전쟁을 일으키고 이웃을 해치며 공멸의 길을 갈 것인가 하는 선택은 언제나 우리 인류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선한 선택은 우리 모두 모여 함께 지혜를 더할 때 현실화 될 것이라 믿습니다.
송길영 부사장
■ 학력
ㆍ고려대학교 전산과학과 학사
ㆍ고려대학교 대학원 전산과학과 석사
ㆍ고려대학교 대학원 컴퓨터학과 박사
■ 경력
ㆍ다음소프트 부사장
ㆍ다음소프트 최고전략책임자
ㆍ한국BI데이터마이닝학회 이사
ㆍ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
ㆍ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ㆍ서울여자대학교 컴퓨터학과 겸임교수
■ 방송 출연
ㆍtvN 《크리에이티브 코리아》(2013년) 전문 심사위원으로 출연
ㆍJTBC 《썰전》
ㆍJTBC 《김제동의 톡투유 - 걱정 말아요 그대》
ㆍJTBC 《비정상회담》(91회)
ㆍOtvN 《어쩌다 어른》
■ 저서
ㆍ《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 쌤앤파커스. 2012년.
ㆍ《한 우물에서 한눈팔기》. 베가북스. 2014년.
ㆍ《상상하지 말라》. 도서출판 북스톤. 2015년.
[동대신문 16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