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소년행
오릉의 소년들이 금시 동쪽에서 (五陵年少金市東)
은 안장 백마 타고 춘풍에 끄덕대네 (銀鞍白馬度春風)
낙화를 짓밟으며 어디로 가는고 (洛花踏盡遊何處)
히히덕거리며 호녀의 술집에 들어가네(笑入胡姬酒肆中)
이백의 소년행(少年行)이란 시로 당 현종 말기의 흥청망청하고 느슨해진 사회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현종 초기는 개원의 치(開元之治)라 불릴 만큼 평화와 번영을 구가했다. 두보가 "나라와 개인의 창고가 가득 차고, 온 나라 도로에 도적이 사라졌다(公私倉름俱豊實 九州道路無豺虎)"고 묘사했듯이 풍요롭고 기강이 잡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종은 말기로 가면서 양귀비와 사랑에 빠져 꿈속을 헤매게 된다.
재상 이임보도 황제의 눈치만 살피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덮어 버렸다. 안록산이 3개 절도사를 맡게 되어 권력 집중에 의한 위기가 초래될 수 있는데도 내버려 뒀다. 기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지배층의 환락도 한계를 넘게 되고, `안사의 난`이란 거대한 폭풍이 밀려오는데도 일상의 즐거움에 빠져 있었다.
장안의 오릉은 귀족들이 많이 살던 부촌으로 서울의 강남쯤 될 것 같다. 금시는 장안 서쪽에 있었는데 그 동쪽 어귀에 있는 외국 여자들의 술집으로 화려한 안장의 백마를 탄 부잣집 아들들이 가고 있다. 벤츠를 타고 강남의 고급 룸살롱을 드나드는 우리의 재벌가 귀공자와 유사한 모양새가 아닐까.
명산대천을 찾아 호연지기를 키우고 국가관 고취에 힘써야 할 귀족 자제들이 고급 기생집에 드나들고 있다. 그것도 어린 나이에. 사회 기강이 흐트러진 징표다. 돈 많은 부모는 종종 돈을 미끼로 자식들을 컨트롤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가정에서 도덕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기생집 술값을 용돈으로 주는 가정에서 자식교육이 망가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은 안장에 백마를 타고 봄바람에 거들먹대니 대단히 시건방져 보인다. 특히 떨어진 꽃잎을 밟아 뭉개는 행위에 시인은 분노한다. "이놈들 꽃잎을 짓밟지 마라"며 외치는 이백이 느껴진다.
자연에 대한 외경심이 없고 아름다움에 무감각한 마음에서 나오는 행위로 보인다.
이런 심성으로는 물질과 권력을 전부로 아는 철면피 인간이 되기 쉽다. 상류층 자제들이 이 모양이니 그 사회의 미래가 밝을 리 없다.
사치와 오만에 젖은 소년들의 모습은 사회 지배층의 타락과 말기적 증상을 대변하는 것 같다. 오릉, 은 안장 백마, 낙화, 호녀술집 등 동영상처럼 이어지는 몇 개의 캐리커처로 시대의 분노를 잘 표현했다.
김상규 동국대 석좌교수(전 조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