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옥계원(玉階怨)

등록일 2020.05.25. 조회 920

찬이슬 서린 옥계단 (玉階生白露)
밤이 깊어 비단양말 적시네 (夜久侵羅襪)
기다림에 지쳐 수정발 내리고 (卻下水精簾)
돌아보니 가을달이 영롱하구나 (玲瓏望秋月)

이백의 옥계원(玉階怨)이란 시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여인의 애틋한 마음이 한으로 응축되는 모습을 묘사했다.

봉건시대에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었다. 경쟁이 가정에까지 도입된 것이다.

남자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겠지만 여인들의 입장에서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여인들의 시기나 질투가 많은 소설과 드라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유교경전인 대학에는 치국을 하려면 제가를 먼저 해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옛날에는 한 집안에 많은 여인들이 함께 살았을 테고 그 여인들 간에 알력을 조정하고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濟家). 또 그런 능력이 있어야 치국(治國)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집안 여인들 간의 투기와 알력은 현실 정치의 축소판이었을 테니까.

경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장경제의 핵심이다. 시장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더 좋은 제품을 보다 낮은 가격으로 생산하게 하는 힘이다. 이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세상에 경쟁자가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상낙원이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경쟁을 없애기 위해 공산주의 실험도 해 봤지만 동구권과 북한을 보더라도 결과는 가난밖에 없었다. 먹고살기 위한 경쟁은 이 물질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이 세상을 고해라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원죄를 가진 죄인들이 사는 곳이라 했다.

그래도 사회의 최소 단위인 가정에까지 경쟁원리가 도입된 것은 너무하다. 일부일처제를 시행한 것은 문명의 거대한 진보였다.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경쟁하는 구도는 기사도 등의 소재가 되기도 하여 낭만적이지만, 한 남자를 두고 여러 여자가 경쟁하는 모습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다.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시는 압축과 여백, 그리고 여운이 돋보인다.

돌계단, 흰 서리, 젖은 양말, 가을 달 등 함축적인 단어 몇 개를 열거했을 뿐이다. 흰 서리는 차가운 느낌을 더해주고, 섬돌과 젖은 양말은 연인을 기다리며 섬돌에서 왔다 갔다 하는 여인을 느끼게 한다. 기다리다 지쳐 수정발을 내려도 잠은 오지 않는다. 말똥말똥 가을 달을 쳐다보는 심정은 어떠했을까? 잠 못 이루고 박정한 사내를 기다리는 동안 만감이 교차했을 텐데, 그 많은 사연을 모두 생략하고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김상규 동국대 석좌교수·전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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