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이백과 이별

등록일 2020.05.25. 조회 549

선배는 서쪽 황학루를 떠나서 故人西辭黃鶴樓
봄안개꽃 핀 3월에 양주로 가네 煙花三月下揚州
외로운 돛대 점점 작아져 파란 하늘 속에 사라지고 孤帆遠影碧空盡
장강의 물만 하늘 끝으로 흘러가네 唯見長江天際流

이백이 맹호연이란 선배와 이별하는 시로 장대한 스케일을 보여준다. 영화를 찍는 듯, 먼저 이별 지점인 황학루 인근 봄안개꽃을 클로즈업한다. 그 후 배가 멀어짐에 따라 돛대가 점점 작아져서 사라지고, 장강의 물이 하늘에 맞닿아 있는 장면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떠나가는 친구를 바라보는 시인은 화면에 나타나지 않지만 담담해 보인다.

영화 속 아름다운 이별처럼…. 이 시에서 나타난 시어나 장면만으론 슬픔 같은 것을 느끼기 힘들다. 그러나 진정 외로운 사람만이 이별을 슬퍼할 수 있고, 지극한 슬픔에는 눈물이 없는 것이 아닐까.

때는 춘삼월, 안개꽃이 활짝 피고, 봄놀이가 한창이다. 주위는 온통 부산하고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백은 슬픔에 싸여 있다. 이백은 자기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지식과 재능이 뛰어났고, 신분사회에서 아무리 재능이 탁월해도 주류에 끼기 힘들었다. 그런데 떠나가는 맹호연은 고수가 고수를 알아보듯 이백의 자질을 인정해준 모양이다. 자기를 아껴주던 선배가 떠나니 외로움이 몰려온다.

다카시마 도시오(高島俊男) 선생은 이백이 현종에게 발탁되지 못한 맹호연에게 그다지 친밀감을 갖지 않았다고 주장(`이백, 두보를 만나다` 64쪽)하지만 수긍하기 힘들다. 이백의 `맹호연에게`란 시 중 "높은 산을 어이 우러르랴! 다만 그대의 맑은 향기를 경애할 뿐(高山安可仰, 徒此揖淸芬)"을 "일단 경의를 표하면서도 멀리하겠다"로 해석한 것은 잘못이라 생각한다. 두보 등 천재적인 시인들은 모두 이백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아꼈다. 이백 또한 그들을 좋아했고 허물없이 지냈다. 비전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서로를 알아보느냐가 중요했다. 더욱이 맹호연은 감찰어사 등을 지낸 시인 왕유와 절친한 사이로 영향력이 없지 않았다.

"맹 선배가 떠나고 나면 나는 다시 외톨이가 될 것이다. 내 문학적 자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속물들과 살아가야 한다. 이런 삶을 생각하니 정말 서러움이 복받친다"는 독백이 들려온다.

배도 사라지고 하늘과 장강만 보이는 장면은 천지간에 이백 혼자 남게 되는 극한의 고독, 외로움을 부각시킨다. 아무런 수식어도 붙이지 않고 돛대가 점점 작아지는 광경만으로 이별의 슬픔을 자아낸다. 춘삼월, 꽃놀이 등 바깥 세상의 들뜬 모습 때문에 슬픔이 더욱 돋보인다. 그래서 시선인가 보다.

김상규 동국대 석좌교수·전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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