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목멱칼럼]밀레니얼 세대와 북유럽 여성의 당당함
‘겨울왕국2’는 여성의식을 다룬 영화다. 왕국에 또 다시 위기가 찾아 오고 그 원인을 규명하고 나서는 두 자매 엘사와 안나. 이들은 왕국의 위기를 초래한 것이 다름 아닌 아버지와 당시의 관료들이었음을 알게 되고 직접 나서 원주민과의 오랜 원한을 해소한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두 자매의 우정은 남녀의 사랑보다도 더 진하고 따뜻하다. 두 여성 특히 언니 엘사의 영도력은 남자들의 세계를 지휘하면서 종래의 남성가부장적인 시선을 따르지 않는다. 미투(성폭력 고발 운동) 사건을 겪으면서 할리우드도 성 평등의 이념이 확산한 증거로 보인다.
‘겨울왕국’은 현재 미국이 갖고 있지 못한 이상향이다. 그 이상향은 북유럽이고 특히 핀란드를 지칭한다고 알려져 있다. 핀란드의 이미지는 추운 겨울왕국이지만 여성이 활약하고 지구촌의 평화를 상징하는 신화적이고 이상적인 동화 세계다.
왜 그럴까. 실제가 그러니까 그렇다. 현재 미국과 같은 나라가 보기에 핀란드는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이상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두 여성이 증명한다. 올 한해를 달군 두 명의 북유럽 여성. 한 명은 핀란드 여성총리 산나 마린이고 다른 한 명은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다.
그들이 북유럽 여성이라는 점 외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젊다는 것. 마린의 나이는 서른넷이고 툰베리는 열여섯이다. 이들은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소위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다. 그들의 특징은 기성세대와는 확실히 다르다. 소박한 취미를 즐기지만 자기주장을 드러내는 것에 강하고 실제 체험을 중시한다. 툰베리나 마린이 갖고 있는 성향이 그렇다.
툰베리는 지금 보다도 더 어린 시절부터 기후문제에 관심이 많아 선진국들의 배출가스에 대해 성토하는 일인시위를 했다. 그 시위는 많은 추종자들을 낳아 전 세계의 학생들이 학교를 쉬는 하루 동안 대규모 시위를 한다. 학생뿐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지지 세력이 상당히 많아졌다. 정치지도자에게는 따끔한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올해 툰베리는 유엔 환경문제회의에 초대받아 각국의 정상들 앞에서 연설을 함으로써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특히 환경위기를 초래한 주범국 미국을 향한 분노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표시함으로써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이르렀다.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그녀를 선정,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최연소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는 등 그녀의 신화는 너무나 많다. 우리가 방탄소년단(BTS)을 자랑하고 있을 때 스웨덴은 툰베리를 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또 한 명의 놀라운 인물은 서른넷의 여성총리다. 핀란드의 신임총리 마린은 처음부터 어록을 남긴다. ‘나이와 성별보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현재 한국정치가 직면한 아킬레스건을 저격한 말이다. 한국정치가 후진적인 이유는 나이든 어른들이 청년과 여성을 홀대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한국만 그렇겠는가. 많은 나라들의 정치가 안 되는 원인이라면 바로 그것일 수 있다. 저렇게 똑바른 정신을 갖고 국민을 위해 일을 하는 똑똑한 정치가들이 있다면 나라가 흔들릴 이유가 있겠는가 말이다.
핀란드의 최연소 여성총리 임명은 그저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우수한 인재 영입의 오랜 전통에서 나온 사례다. 이미 18명의 장관 가운데 12명이 여성이고 현재 대통령 역시 여성이다. 핀란드 여성의 정치인 비율은 2019년 4월 선거에서 47% 의석을 차지했다. 한국은 겨우 17% 밖에 안 된다. 핀란드는 1906년 뉴질랜드와 더불어 세계 최초로 여성참정권을 부여했고 그 이듬해 200석의 국회의원 중 최초로 17명의 여성국회의원이 진출했다. 이러한 여성참정권의 전통 하에 오늘의 여성내각이 존재하게 됐다. 미국도 부러워할 나라들. 사람도 그렇지만 돈이 많다고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건 아니다. 더 중요한 게 있다. 평등한 삶의 질이다.
정재형 영화영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