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IT칼럼] 다양성에 대한 의문과 회의
미디어 분야에서 다양성은 공익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말이다. 공익이란 말은 무슨 의미인지 알 듯 모를 듯하다. 다양성 역시 그러하다. 다양성이란 말은 구체적이지 않다. 그 추상화의 정도가 공익만큼이나 높다. 많을수록 좋다는 말인가? 숫자가 많으면 바람직하다는 말인가? 황금 비율 또는 최적의 비율이라는 것은 없고, 양적으로 많고, 그 구성의 비율이 동일하면 좋은 것인가? 반면 질적 측면에서 다양성을 평가할 수는 없는가? 혹시 다양성은 가치중립적인 말로 쓰인 적은 없는가? 다양성과 달리 경쟁은 사실 가치중립적인 말이다. 경쟁은 양적으로 많다는 의미로 독점의 반대말이다. 하지만 다양성은 경쟁의 의미를 넘어서 질적 가치를 담고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와 학계에서 미디어가 재현하는 많은 콘텐츠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아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현실의 재현 즉, 우리 앞에 있는 현실을 미러링하는 콘텐츠를 다양성이라는 잣대로 측정해본다. 미디어의 콘텐츠는 언제, 어느 곳에서 형상을 담아낼 것인가? 반영된 모습이 전형적이고 모범적인가? 아니면 당시에만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인가? 그리고 그 모습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인 다양성과 얼마나 유사한가? 그 차이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남녀의 비율이 50대 50에 가까운 현실이 있다. 양성평등 시대에 따라 남녀 간 비율뿐만 아니라 직업에서 요구되는 남녀 간의 역할 역시 동등하며 동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직업군 중 전문직이고 고위 공직인 경우, 남녀 비율이 동일해야 하는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면 80대 20 또는 여성의 비율이 더 낮을 수 있다. 드라마의 속성상 현실 속에서 있을 법한 내용을 전개해야 하는데,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자니 성역할을 고정시킬 수 있는 표현과 비율은 바람직하지 않고, 다양성의 가치를 위해서 개연성을 포기하자니 드라마의 매력이 떨어진다.
미디어는 독점과 집중에서 경쟁과 분산으로 진화해 왔다. 경쟁은 독점의 반대말인 것처럼 집중은 분산의 반대말이다. 희소한 자원, 기술적 독점, 시장의 집중, 정보의 독점과 독점적 해석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 폰을 통해서 진실이 서로 경쟁하고 정보는 해체 및 분산되고 있다. 개인 맞춤형 정보의 양산으로, 한국 사회는 정보의 과잉시대를 넘어 정보의 초과잉시대로 가고 있다. 알고리즘과 AI가 그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미디어가 제공하는 콘텐츠는 시대의 현실을 담아내면서 진화해 왔다. 때로 덜 다양하게 때로 더 다양하게 현실에 맞춰 콘텐츠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다양성이 콘텐츠의 질적 가치를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쓰여서는 곤란하다. 다시 말해 콘텐츠가 담고 있는 성별의 비율이 얼마인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다양성을 기준으로 평가하지는 말아야 한다. 다양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이에 대한 절대적 선을 부여한다면, 다양성이 담고 있는 가치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다양성은 상대적이며 늘 생물체처럼 움직이고 변화하는 개념이다.
다양성은 양적이면서 동시에 질적 개념이다. 맞다. 하지만 질적 개념이라고 해서 반드시 질적 평가의 절대적 기준이 될 필요는 없다. 아울러 이러한 의문을 던져 본다.
다양성이 우리 시대에 중요한 가치인가? 혼돈으로 진실은 가려지고, 잊혀지곤 한다. 그렇다면 누군가에 의해 정리된 현실이 우리에게 진실을 보여주는 것인가? 누가 진실을 말할 수 있는가? 결국 만들어진 즉 재현된 현실 앞에서 우리는 더 똑똑해지는 길밖에는 없는가? 재현된 현실 속에 감춰져 있는 진실을 똑바로 직시하기 위해서.
강재원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