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거짓말의 자유’ 허용 안 된다

등록일 2020.07.22. 조회 839

사람들은 다툴 때 정의(正義)를 내세운다. 사회정의, 경제정의, 사법정의….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단순히 사전적으로 옳고 의로운 것인가? 정의는 현실이고, 실현될 수 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닌가? 그럴지는 몰라도 그리스 철학자들은 정의는 힘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의가 힘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힘이 정의가 되는 건 아니다. 정의가 없는 힘은 폭력이고 야만에 불과할 뿐이다.

법과 정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는 실질적 법치국가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법치국가가 아니면 법이 정의라고 말할 수 없고 정의가 법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법률가는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법은 정의로워야 하고 정당한 법이어야 한다. 그런데 정의로 포장된 법이 오히려 사회질서를 혼란에 빠뜨리고 인간을 구렁텅이에 몰아넣기도 한다.

오늘날 법치국가에서 입법부는 법률을 만들고 행정부는 법률을 집행한다. 사법부는 입법부가 만든 법을 해석·적용할 뿐이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위헌법률심판이다. 우리나라는 헌법재판소가 담당한다. 헌재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정의롭게 판단한다면 위헌법률심판은 입법부를 적절하게 통제하는 수단이 된다. 그런데 헌재도 사법 기능을 행사하지만, 대부분의 법적 분쟁은 사법부에서 관장한다.

헌법은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보장하는 기능을 사법권에 위임하고 있다. 재판청구권은 기본권 보장을 위한 기본권으로 재판청구권의 보장 여부가 법치국가의 성패를 결정한다. 재판청구권은 재판 청구에 그치는 권리가 아니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말한다. 법원은 공정한 재판을 위해 재판을 공개한다. 그래서 재판을 담당하는 사법부가 중요하다. 헌법은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법적 양심으로만 재판해야 한다고 명시, 법관과 법원의 독립을 강조하고 있다. 법이 정의로워질 수 있는지 판가름하는 것은 법관의 재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16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이 지사는 도지사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12명의 대법관이 참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판결에서 무죄 취지(7 대 5)로 파기환송했다. 이 판결에서 다수의견은 TV토론은 공방이 즉흥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순간적인 허위는 범죄의 의도가 없는 것이며,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선거 TV토론의 방향을 설정해 준 이번 대법원 판결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어떤 허위의 발언도 범죄의 의도가 없다고 판단돼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선거법의 관련 규정은 개정돼야 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국회도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해 선거법 개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굳이 선거 후보자들이 TV토론에 나와 국민을 대상으로 토론할 필요가 없다. 범죄의 고의가 없는 허위가 국민의 선택권을 박탈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는 생각해 보자. 선거운동의 자유는 국민의 자유이지 선거 후보자만의 자유가 아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올바른 후보를 선택하라고 선거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잘못해도 범죄의 의도가 없다면 용서받는 나라가 법치국가인가? 역시 법은 정의가 될 수 없나 보다. 법원 앞의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가린 이유를 알 것 같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려면 사실이 진실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물론 그것은 사법부가 할 일이지 국민이 할 일은 아니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