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사면의 기쁨

등록일 2020.07.08. 조회 806

꽃구름 백제성을 아침에 떠나 (朝辭白帝彩雲間)
천리 길 강릉을 하루 만에 돌아왔네 (千里江陵一日還)
강가의 원숭이 울음 그치지 않는 (兩岸猿聲啼不住)
만겹산을 한순간에 지나 왔었네 (輕舟已過萬重山)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이란 시다. 이백은 안녹산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영왕(永王) 이린의 막료가 되었다. 그러나 영왕이 역모로 몰리는 바람에 자신도 대역 죄인이 되어 야랑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다행히 귀양 도중에 사면(赦免)을 받아 강릉으로 되돌아왔는데, 그때의 기쁨을 노래했다.

이백은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것 같다. 영왕이 군사를 일으킬 때는 이미 숙종이 황제로 즉위한 이후였다. 황제와 상의 없이 함부로 군사를 일으키면 당연히 역모로 몰리게 된다. 그런 군대의 막료로 임명되었으니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출세에 눈이 어두워 상황 판단이 흐려졌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백은 귀양 도중에 풀려났고 하루빨리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바람대로 안개 낀 백제성을 아침에 출발했는데 바로 그날 강릉에 도착했다는 내용이다.

KTX를 타고 여행할 때, 너무 빨라서 차창 바깥의 경치가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출발지와 목적지만 기억에 남는데 이백의 이번 여정도 KTX 여행과 비슷했나 보다. 분초를 다투는 요즘 시대의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현황과 문제점에 이어 개선 방안이 바로 나온다. 중간 과정은 무시된다. 한술 더 떠 신문을 볼 때 제목만 읽는다. 그 결과 정보는 많은데 이를 연결하는 깊이 있는 지식과 지혜를 얻기 힘들다.

이백도 배가 너무 빨리 지나쳐 와서 여정의 구체적인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다. "뭐가 있었더라!" 하며 3연을 시작한다. 여행 도중 끝없이 이어져 온 원숭이의 애절한 울음소리와 강가에 우뚝 솟은 험준한 산들을 주마등처럼 스쳐왔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사면의 기쁨 속에 친구들과의 술 파티나 아내와 아이들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다만 귀환 이후의 일은 상상에 맡기고 있다.

비약과 요약이 탁월하다. 요약된 여백에 기쁨을 채워넣었는지 단순 간명한데도 시가 살아 있다. `꽃구름, 천리 길, 하루에 주파, 경쾌한 배`는 날아갈 듯 가벼운 이백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 같다.

고통받고 괴로웠던 순간들, 원숭이 우는 계곡과 험준하고 으스스한 만중산을 단숨에 탈출해버린 그 통쾌함을 멋지게 표현했다.

고진감래다. 지옥이 있어야 천국이 있듯 기쁨은 고통이 동반되어야 하나 보다. 지금 코로나로 어렵지만 이것도 머지않아 극복될 것이고 우리의 기쁨도 커질 터이다.

김상규 동국대 석좌교수(전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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