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민생 성과’로 답해야 한다
판문점 회담 뒤 지방선거 압승
지지 하락 뒤 최고점에서 총선
국민은 ‘성과와 겸허’ 약속 주시
‘압도의 유혹’ 제대로 관리하고
경제의 정치 예속화 막아내야
보수 정당은 전면 재구성 절실
권력은 성과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툴다가 통하지 않는다. 국민의 기대가 대단히 높다. 특히, 민생 분야에서 국민은 삶의 변화가 체감될 정도로 정부의 성과를 기대한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두려움을 갖고 유능해지고 도덕성을 갖추고 겸손해져야 한다.” 2018년 6·13 지방선거 압승 후 대통령의 언급이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보여준 건 간절함이다.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겠다. 결코 자만하지 않고 더 겸허하게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 지난주 대통령의 발언이다.
“포스트 코로나의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고 세계적 위기에 대처할 책임”을 대통령은 자임한다. 대통령 지지도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이후 최고치다. “이번 선거 최대의 공적은 대통령께 드려야 한다. 40% 초반까지 가던 대통령 지지도가 국난 상황에서 치솟은 게 크나큰 힘이 됐다”는 이낙연의 분석은 정확하다. 같은 다짐을 2년 새 두 번 할 수 있는 것도 드문 일이다.
코로나 크레디트와 야당 책임론의 운칠복삼(運七福三)이 아니라, ‘문제 해결과 성과 창출의 정치’가 대통령과 여당이 할 일이다. ‘협치의 정치’가 필요하다. 지역구 의석으로만 단독 과반, 더불어그룹 180석, 범진보 190+석으로 사실상 모든 게 가능한 상황이지만 굳이 그래야 한다. 전·현직 의원이 곧 입각할 텐데 진정성이 전제돼야 한다. 선언적이거나 구색 맞추기여선 안 된다. 제도화하는 협치의 정치여야 하며 국회의 각료 또는 총리 추천도 하려면 당장 할 수 있다.
더불어그룹 180석 vs 미래그룹 103석의 밑에는 지역구 득표율 49.9%(1434만5425표) vs 41.5%(1191만5277표), 비례대표 득표율 범진보 52.2% vs 범보수 41.5%가 있다. “집권세력 내부 분열과 독선이 있었고, 분파적 행태를 보이거나 계몽주의적 태도로 정책을 추진했다”는 노무현 시대의 반성을 다시 보는 이유다.
‘의회정치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대통령제의 내각제적 운용과 정당집단주의에 따른 대립과 교착의 의회정치에서 견제와 균형의 정치여야 한다. 여당의 역할이 중요한데 ‘문재인 청와대당’ 압도의 유혹 관리가 관건이다. ‘위장 교섭단체’는 첫 시험대다. 교섭단체 중심 국회 운영의 관행과 제도에서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의 자율성과 책임 존중도 중요하다. ‘정치개혁과 개헌의 정치’도 함께 가야 한다. 선거제도는 물론 정부 형태 나아가 우리 역사와 문화에 어울리는 헌정 체제가 뭔지 고민해야 한다.
희망 야당의 싹은 느껴지지만, 당분간은 어렵다.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논란은 구차해 보인다. 사실상 공중분해됐는데도 권력 다툼으로 보인다. 어쨌든 ‘국회의원으로 4년은 간다’고 생각하면 개인과 가문의 영광은 되겠지만, 보수의 재구성은 멀어진다.
진보 가치가 주류화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보수의 비주류화가 계속 진행된 거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그리고 올해 총선까지 범진보는 32.7%, 47.8%, 60.4%, 52.2%였다. 반면, 범보수는 33.5%, 31.2%, 36.6%, 41.5%였다. 이번 총선이 진보 우위 정치 지형의 완성이다. 핵심은 옛 386세대다. 50대의 대부분으로 이번 선거에서 절반 이상이 ‘정부지원론’에 한 표를 던졌다. 20∼50대에서 적게는 42%, 많게는 64%가 정부지원론에 동의했다. 60대+세대에서만 54%가 ‘정부견제론’을 택했다. 2050세대는 전체 인구의 73%다. 짧게는 2년 후 대선과 지방선거, 길게는 4년 후 총선 때 586세대는 60대의 ‘진보노인’ 시대를 연다.
변화하는 영남 지역주의도 위협적이다. 민주당의 영남지역 정당투표 득표율은 지난 선거보다 상승했고 부산에서 열린민주당까지 포함하면 전국득표율과 비슷하다. 정의당까지 넣으면 진보-보수 격차는 3.7%포인트에 불과하다. 대구에서도 민주당은 12개 전 지역구에 후보를 냈고, 그중 11개 지역구에서 20% 이상 득표했다.
서울 종로와 중구의 지역구 선거에선 졌지만,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의 야당 승리는 새로운 미래 가능성의 출발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출발은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것부터 하는 거다. 당론 투표는 최소화하고 교섭단체 중심의 정당 운영에서도 벗어나는 거다. 미래 가치와 비전의 고민은 시간이 필요하다. 총선 후 일주일, 여야 모두 할 일이 많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