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憲裁 결정 불복은 헌법 否定이다

등록일 2017.03.13. 조회 1862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헌법재판소에 청구된 지 92일 만에 탄핵이 결정됐다. 1987년 헌법 체제에서 두 번째로 청구된 탄핵심판은 2004년의 탄핵심판과는 사뭇 달랐다. 첫 탄핵심판에서는 재판 기간도 짧았으며, 탄핵사유도 3개에 불과했고, 탄핵심판에 대한 국민의 행동도 탄핵 반대 집회만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 집회가 열리더니, 어느 순간에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도 열렸다. 두 집회가 주말마다 열리면서 탄핵의 찬반을 놓고 국민의 갈등은 커졌다. 더구나 두 집회에 틈틈이 국회의원들까지 가세하면서 갈등을 더 키웠다.

탄핵 찬반으로 갈라진 국민의 집회는 그 규모나 위세에 관계 없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탄핵에 대한 여론이 갈리면서 탄핵심판에 대한 법리논쟁은 뒤편으로 밀렸다. 탄핵재판은 국민의 여론에 따라 그 향배가 결정되는 여론재판도 아니고, 정치적 논리로 풀어나가는 정치재판도 아니다. 헌법은 사법 기능을 수행하는 헌재(憲裁)에 탄핵심판을 위임하고 헌법을 기준으로 결정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헌법이 정치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국가의 최고 규범이긴 하지만, 법이란 점에는 변함이 없다. 헌법재판은 재판관의 법적 판단을 통해 결정되는 사법재판이다.

선고일이 임박하면서 탄핵 찬반 세력은 자신의 기대와 다른 헌재의 결정이 나온다면 이를 거부하거나 불복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발언이나 태도는 국가의 법질서를 무시하는 것이며, 헌법재판관을 압박해 재판의 정당성과 공정성을 훼손시키는 극히 반(反)헌법적인 것이다. 더구나 탄핵 찬반 집회에 비록 선출직 공무원이긴 하지만 입법부의 구성원인 국회의원이 참석하는 것은 자칫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동안 여야를 비롯한 정치권은 헌재의 결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국민적 갈등이나 분열을 막고 국가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만 저울질하면서 이를 방관하거나 부추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국정을 책임져야 할 사람의 태도가 아니며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다. 이런 정치권의 행태가 민주적 법치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정치권은 누구보다도 먼저 헌재의 결정에 대해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또한, 헌재의 결정에 불복하는 국민을 설득하고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헌재의 결정이 모든 국민을 만족하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헌재의 결정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국가의 중대한 사항이었다고 해도,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고 헌법 질서를 지키는 일이다. 헌재의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도 구속한다. 민주주의는 자기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포용함으로써 발전한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을 지낸 세계적인 헌법학자 콘라트 헤세 교수는 ‘국민의 헌법 수호 의지가 법치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했다. 헌재는 헌법에 의해 탄핵심판의 권한을 부여받은 헌법기관이다. 헌재의 결정을 부정(否定)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일이다. 국민은 헌법의 제·개정권자이지만, 자신이 동의하고 약속한 헌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헌재의 결정을 거부하거나 불복종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헌법 준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일이다.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는 것이 헌법을 준수하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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