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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학 미술학부 서양화전공 졸업작품전

“알에서 나와 세상으로 나아가라”

포스터

[동국대] “알에서 나와 세상으로 나아가라”… 예술대학 미술학부 서양화전공 졸업작품전

‘줄탁동기啐啄同機’는 깨우침과 관련된 스승이 제자에게 깨달음을 얻도록 인도하기 위해 제시한 문제입니다. 알 속에서 자란 병아리는 부리로 껍질 안쪽을 쪼아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줄’은 바로 병아리가 알껍데기를 깨기 위하여 쪼는 것을 말합니다. 어미닭은 품고 있는 알 속의 병아리가 부리로 쪼는 소리를 듣고 밖에서 알을 쪼아 새끼가 알을 깨는 행위를 도와주는데, ‘탁’은 어미닭이 알을 쪼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알껍데기를 쪼아 깨려는 병아리는 깨달음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요, 어미닭은 수행자에게 깨우침의 방법을 일러주는 스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병아리와 어미닭이 동시에 알을 쪼기는 하지만, 어미닭이 병아리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아니고 어미닭은 다만 알을 깨고 나오는 데 작은 도움만 줄 뿐,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병아리 자신인 셈입니다. 이번 졸업을 하는 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점은 첫째, 여러분은 그동안 미술에 대하여 이론과 실제를 터득하였으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란 점입니다. 둘째, 미술의 다양한 표현방법이 변모해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변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 욕심을 부려야 합니다. 셋째, 작품제작에 임했을 때는 작품에 혼이 베이도록 모든 실험을 가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의 작품은 혼이 영입된 작품이 되어 같은 장르의 예술가에게나 일반 감상자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져 오래 오래 기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졸업미전을 축하드리며 알에서 나와 세상으로 나아가는 여정에 항상 여유와 행운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지도교수 주도양]

동국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회화와 사진의 경계에서 꾸준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작업하고 있다. 지난 백여 년 동안 우리를 열광케 했던 사진이 기록과 재현이라는 큰 명제에서 벗어난 작업을 보여준다. 현재 동국대학교에서 미술학부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회화와 사진을 강의하고 있다. 사비나미술관, 금호미술관, 예화랑 등에서 20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성곡미술관, 포스코미술관, 환기미술관 등에서 150여회의 단체전에 참가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경기도미술관, 사비나미술관, 동국대학교, 지하철9호선운영, 대명비발디파크 등 공공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국내외 국제 아트페어, 크리스티경매에 소개되었다.

《강우주》-그 가느다란 선 위에서 나는 절망하네, 싱글채널비디오, 3분, 2018

아무런 색도 가질 수 없는 동그란 원, 불현듯 피어오르는 낭만은 나를 괴롭게 한다. 원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하고 뒤틀리는데 나는 그것을 바꿀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원 밖의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판타지에 사로잡힌다. 나는 지금 그 원을 경계 짓는 선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다. 그 누구도 본 적 없다는 자유라는 것을 좇다가 여기에 왔다. 나는 매번 그 벽에 부딪히면서도 이 원을 하트로, 별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성장통은 아프다. 잡생각을 만든다. 넘치는 현실주의자들 사이에 나는 넘치게 산만하다.

《김도연》-Friction, 162.2x130.3cm, 판넬에 그을음, 2018

허전함이 무언가를 잡았던 느낌을 기억하는 손이라면, 공허함은 무언가를 잡으려고 애썼던 손이다. 그렇게 무언가를 애써 잡으려는 마음이 클수록 그 후의 공허함은 더 커진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공허함을 주제로 ‘연기’를 이용하여 작품에 개인적인 감성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김자영》-백일몽1-2, 112.1x145.5cm, 장지에 아크릴, 2018

어느 순간부터 일상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인간관계에서 느껴지는 피곤함과 끊임없는 과제, 나를 옭아매는 사회적 관습들은 나를 지치게 했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흥미로운 거리가 있기를 열망하고 있다. 이런 열망이 내 꿈속에 반영 되었다. 나는 자연 소재에서 치유를 받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꿈에 자연물들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자연물들은 현실세계에 있는 대로가 아닌 독특한 형태로 출연했다. 그런 장면에 인상을 받아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로써 내 작업은 현실 세계에서 충족되지 못한 욕망들이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충족되는 "백일몽" 에 다다르게 되었다.

《김지수》-Black Symphony, 193.9x130.3cm, 캔버스에 유채, 2018

어떤 시대의 초상. 이 세대의 초상. 불확실과 불안정의 시대 속, 우리는 약간의 무기력증 속으로 빠지는 동시에 한계 없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혼란과 자유가 공존하는 감정 속 우리의 몸부림은 아름답다.

《박은서》-시대가 하나로 통용되다, 76x58cm, 액자에 실과 청바지, 2018

가느다랗고 연약한 실의 특성은 작가에게 단순히 실이라는 재료를 넘어서 소통하는 요소로 작용된다. 선적인 드로잉적 요소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실이라는 재료는 작은 바람에 잘 휘날리고, 자연스러움과 동시에 불규칙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과 관람객의 호흡에 따라서 작품의 실의 가닥가닥이 변형된다. 완전한 것은 호흡하지 못한다. 작가는 실이라는 재료를 이용하여 관람객의 호흡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즉 살아있는 작업을 추구한다.

《박정민》-1.Vacant Space, 가변크기, 혼합매체, 2018

Vacant Space는 개인의 우울함에서 기인한 묵시록적인 풍경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우울을 담은 작업이다. 개인성을 무시하는 보편적 가치 추구의 사회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종종 한계를 느끼고 도전정신과 성취감이 좌절된다. 또한 기성세대가 구축해 놓은 가치체계와 물질세계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완전히 바꾸거나 창조함으로써 느끼는 성취감을 느끼기 어렵다. 이런 시대의 개인의 절망감은 무기력함이 된다. 그래서 나는 작품을 통해 우울함이 녹아 든 세기말적인 풍경과 판타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가능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네모난 평면의 불안정한 세계에서 나는 전지전능한 조물주가 된다. 이런 묵시록적인 풍경들에 대한 나의 환상은 무기력한 일상을 타개고자 하는 시도이자 유일한 방법이 되었다. 이러한 묵시록들이 의미가 있는 것은 역동적인 긴장 속에 공포와 희망의 이미지들이 현재의 불안정한 개인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동시에 희망의 요소들도 있음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은 의도한 종말론이 될 수도 있고 유토피아와 같은 환상세계일 수도 있다.

《범찬》-인연의 굴레, 65.1×53.0cm, 72.7x60.6cm, 캔버스에 유채, 2018

인간이 자연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는 것은 오랜 세월 함께 호흡해 온 시간 때문일 것이다. 눈, 비, 바람 거센 시련의 시간 속에서 나이를 먹어도 풀빛을 더한 채, 계절의 옷을 바꿔 입는 나무는 볼수록 '오래 만난 스승' 같은 느낌이 든다. 나뭇잎, 가지, 기둥, 뿌리까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 없이 명상의 대상이 된다. 이렇듯 나무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버릴 줄 알고, 비울 수 있는 지혜를 가졌다.

《원선진》-The Entrances of Your Dream, 162.2x130.3cm, 캔버스에 유채, 2018

창문마다 묻어 나오는 감정의 흔적, 그러나 그 내부에 대한 궁금증은 가려진 채 느낌만이 남겨져 일렁인다. 유럽에서의 오래된 창문과 그 주변은 각각의 흔적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를 담고 있다. 건물의 경직된 딱딱함을 뒤로한 채 그것이 가지고 있는 낭만적 잠재력을 보존하고자 하였다. 밖을 보기 위한, 또는 안을 보기 위한 고정되고 경직된 프레임이지만 그것을 감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일렁이는 색들의 조합은 관객에게 건물이 흔들리는 듯 한 착각을 주기도 하는데, 이는 현실에서 실용적 창문보다 그 이면의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요소를 담아내기 위함이다. 건물의 장소는 배제하고 관객들은 저마다의 감상으로 창문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서 저마다의 느낌에 빠져든다.

《유아영》-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호로 89, 144.5×112.1cm, 캔버스에 유채, 2018

쓸모없었던 공간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려는 나의 시선을 통해 의미 있는 공간으로 전이되고, 무가치했던 것들이 비로소 가치 있는 바로 탈바꿈된다. 뜯겨진 타일, 녹슨 벽 등이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탈바꿈 되고 그것이 화면 위에 그려졌을 때,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자유를 느낀다. 버려진 공간의 불규칙한 질감은 아름답다. 더럽기에, 추하기에 아름답다.

《이기연》-Nobody loves me, 싱글채널비디오, 2분57초, 2018

사랑에 관하여 우리는 어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모두 그 상대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작가는 이 인정하는 시간이 꽤나 오랜 걸린 편이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인정이 다 안 되어 있을 수 있다. 허나 그 인정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같은 시간에 사랑의 감정은 두 사람의 감정이 된다. 그 시간 안에서의 감정은 그 기간이 끝난 순간 내 의도와 상관없이 버려지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그건 스스로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 기간이 끝난 후에 오롯이 내가 감당하는 시간은 나의 것이다.나의 사랑이며 나의 감정이다. 그 시간과 그 마음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우면서 외로운 순간들이다. 이 순간은 매우 개인적이다. 어쩌면 사랑한 시간들은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까지 느껴진다. 이 마음이 지금의 작가의 모습이다. 작가는 지금을 영상 속에 담았다. 영상 속에 작가는 홀로 생각한다. 혼자의 시간의 혼자의 마음을 담는다. 그 혼자의 시간은 영상을 보여주면서 혼자의 시간에서 탈피한다. 작가의 시간과 감정은 관객에게 전달되고, 그 외로운 시간은 그 공간 속에서는 우리가 된다. 다시 혼자의 시간에서 벗어나는 매우 사랑스러운 순간이 되는 것, 이 점이 작품의 목적이 된다.

《이도연》-그 곳은 가득하지 못했다, 162.2x112.1cm, 캔버스에 과슈, 2018

당신의 옛날 기억은 지금의 당신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현재 당신을 만들어 준 디딤돌이었나, 혹은 지금보다 더 나아가지 못하게 된 족쇄였나? 작가는 본인의 유년시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나 태도가 과거에 비해 많이 변화되었음을 느낀다. 작가의 과거 기억에는 어릴 때부터 성격적으로 가지고 있던 외로운 기질과 그 밖의 다른 상황들 속에서 느꼈던 감정적 결핍들이 있다. 과거엔 그 결핍들을 감추기에 급급했다면 지금은 작가의 주변 사람들에게 가감 없이 드러내고자 한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변해왔고 지금도 변화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어두운 면은 있다. 그들이 그 내면을 감추던, 드러내던 무엇이 옳고 그르다 말할 순 없지만 지금 고수하고 있는 태도가 자신을 편하게 만든다면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으며, 감정적으로 도태된 기억들이 담긴 장소 또는 상황들을 평면이라는 매체에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결핍의 잔상들을 한데 모아 타인에게 공개한다. 앞서 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년시절에는 감추고자 했던 블루라는 컬러에 대한 관심을 작업상에서 함께 드러내고자 한다. 평면 위에서 단면적으로 구성 된 풍경을 담은 회화 작업은 관객들에게 최대한 편안한 감정을 주기 위해 구성되었지만, 그 편안함 속에 담긴 스토리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수지》-#_1, 112.1x162.2cm, 캔버스에 유채, 2018

“그림은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응축하여 표현하였기 때문에 그림 전체를 물감으로 칠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세계란 나의 의미가 선택적으로 부여됨으로써 형성되며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선택되지 못한 또는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끝이 없는 정의과정 속에 놓여있는 불완전하고 상대적인 시간과 공간이 아닌가 생각한다.”나에게 있어서 세계란 퇴적물이 형성되어 가는 살아있는 역사와 상호 영향관계가 있으나 명명할 수 없는 무언가의 것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또한 세계는 나의 눈을 통해 형성됨으로써 결코 나라는 주체자와 떨어질 수 없다. 즉, 내가 세계와 직면하고 그 안에서 주체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 속에서 세계가 형성되고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그림이란 내가 보고 생각하는 세계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물질이다. 그림에는 내가 걷고 걸어왔던 길을 중심으로 형성된 역동적인 퇴적층의 흐름과 같은 세계가 담겨있다. 그림속의 길은 하나의 주체성이 담긴 의지의 선임과 동시에 캔버스에 담긴 물감들에 대한 기저선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물감의 쌓임과 번짐, 붓의 움직임을 통해서 나의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형상화하였다.

《임서현》-자연과사람, 142×92.5cm, 캔버스에 유채, 2018

“나는 불안한 감정들이 흥미롭고 편안하다. 온전히 행복한 상태란 없으며 어느 정도의 고통이 지속되는 상태가 더 자연스럽고 완전한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림들 속엔 그러한 추의 감정들로 변형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보통사람들이 감추고자하는 불안상태에서 어정쩡한 자세를 한 채 그림 속에 존재한다.” 당장 내일의 의식주와 전쟁에 대해 큰 우려가 없는 우리들은, 사적인 것들에서 남몰래 고통 받는다. 작가는 그러한 감정상태의 사람들을 곧잘 찾아내고 관찰한다. 분노와 슬픔으로 일그러진 사람의 얼굴은 작가가 평소에 볼 수 없던 다른 이면의 얼굴인 것만 같다. 그림들 속엔 늘 그렇게 얼굴과 몸이 일그러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무언가를 하고 있지도, 하려하지도 않는 듯한 모습으로 어정쩡하게 캔버스 속에 갇혀있다. 작가는 이러한 무의식 속 얼굴들이 있기에 나른하고 편안한 일상을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전소희》-Stunning Pieces, 가변크기, 혼합매체, 2018

“자라면서 나는 내 스스로가 수집가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집가가 되어가는 과정은 결국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것과 동일하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도 결국 이러한 나의 수집의 일부, 즉 나라는 사람의 한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작가는 일상에서의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들을 수집하고 기록하고자 했다. 일상이라는 범주 속에서 찾아내는 기억할 만한 순간들, 일상 속에서 지친 순간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그것들이다. 작가는 이 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 각기 다른 매체를 사용하였다. 각각의 매체가 갖고 있는 특성에 맞게 사소하지만 빛나는 순간들을 사진으로 수집하고 보여주고자 했으며 작가가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에 대한 수집을 회화로 풀어내고자 했다.

《전윤주》-No.3, 91.0x116.8cm, 캔버스에 유채, 2018

디지털로 저장된 이미지는 쓰임이 지나면 삭제 버튼으로 쉽게 지워진다. 작가가 심리적으로 위치한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사회의 기대에 못 미쳐 버려질 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을 항상 지니고 살아간다. 작가가 이미지를 선택하거나 버리는 과정 역시도 사회 속 우리네 모습과 닮아있다. 작품엔 언제 찍은 지도 모르게 잊혀져가던 휴대폰 속 이미지가 사용된다. 어두운 밤은 사람의 감정을 극대화 시켜 블랙이 되었고, 숨긴 이미지를 드러내지 않았다. 작품 속엔 주인공이 없다. 작가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처럼 은은하게 흘러가는 이미지만 남는다.

《정연진》-2_Untitle, 200x150cm, 디지털 프린트, 2018

작가는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가 사회 내부에서 어떻게 상호작용 되는지에 대해 그리고 이 속에서 만들어진 규율, 규제, 가치체계가 어떻게 작용하는 지에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제도(濟度)’ 속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은 사회가 그리는 ‘제도(製圖)’화 되어진 것이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제도적으로 제도화 되어가는 인간의 군상’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사회 체계를 일련의 어렴풋한 밑그림으로 나타내고 이를 덮어쓴 인물과 칠흑의 공간의 대비를 나타내어 흑백의 양면성과 그 뒤에 감춰진 이면, 즉 ‘제도적 제도화’의 표상을 보여준다. 옳고 그름을 나눌 수 없는 복잡한 인간상을 어느 틀에 묶어 ‘나’라는 인간의 절대적인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공동체가 만들어낸 임의적 틀 속에 자신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축소시키고 있음을 짚어낸다.

《정재령》-Poster Series 2_ Las Meninas, 162.2x97cm, 캔버스에 유채, 2018

〈Poster-series〉는 사회제도 속의 개인의 한계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잘 알려진 명화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패러디를 통해 동시대 젊은이들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갑을관계에 대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특히 최근 이슈가 된 자본주의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는 대기업들의 상황을 각 기업의 상징 색상과, 라인, 심볼 등을 통해 디지털 프린트와 캔버스에 옮기는 방법으로 풍자했다.

《한예지》-자유, 연대, 평등, 각 120×60cm, pvc에 프린트, 2018

" 예술이 현실과 다른 점은 예술은 주제가 아무리 어둡더라도 항상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이지 않은 것은 예술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며, 예술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데미안 허스트 현대 미술은 기존에 쌓아왔던 사조를 뒤따르기 보다는 더 열린 방식으로, 그 과정자체를 작업으로 승화 하며, 작가와 관객. 모두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다. 예술의 경계에 머물면서 미술이 아닌 것을 미술로 설득함으로써 작가개인도 과거로부터 지켜져 왔던 전통적 미적 가치를 거부하나, 예술은 오로지 아름다움 자체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신조 아래 '예술을 위한 예술 (l'art pour l'art)의 유미주의적 태도를 유지했다. 전시되는 작품의 연작들은 소속감과 연대를 의미 한다. 이는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것으로, 관객이 작가의 사적인 경험과 공공적 체험의 경계에 들어섰을 때, 관객과 작가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수행하는 저널리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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