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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삼국유사 속 ‘고기’는 고려 승려가 쓴 역사서”

김상현 교수 논문서 주장 ☞ 언론사 기사 바로보기
“삼국유사 속 ‘고기’는 고려 승려가 쓴 역사서”

‘동사강목’·장지연의 논문 등 저술 50편 분석해 흔적 확인
“어딘가 존재할 가능성 있다” “고기, 한 종류일까” 반론도

지금은 전하지 않는 <고기>(古記)란 역사책은 국내 사학계의 첨예한 논란거리 가운데 하나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 고려 승려 일연(1206~1289)의 <삼국유사>에서 <고기>는 단군신화 등을 기록한 원전으로 숱하게 인용되지만, 실체는 안개에 싸여 있다. 문헌사학자들은 <고기>란 이름 자체부터 단순 옛 기록들을 뜻하는 보통명사인지, 별개 역사책인지를 놓고 입씨름을 거듭해왔다. 최근 이 수수께끼의 역사책이 11~12세기 고려 때 편찬돼 19, 20세기 초까지 실물로 전해져 널리 읽혔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상현(66) 동국대 사학과 교수는 14일 경희대에서 열린 한국고대사학회 발표회에 이런 내용을 담은 ‘고기의 사학사적 검토’란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안정복의 <동사강목>과 이익의 <성호사설>, 장지연의 논문 등 <고기>의 내용이 인용된 조선 후기~구한말 학자들의 저술 50여편을 분석한 결과 <고기>는 고려 승려가 쓴 역사서이며 조선 말기까지 실물이 유통됐다는 것을 파악했다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특히 “고려 전기 <고기>가 편찬됐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단군신화에 대한 접근을 고려 중후기의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던 종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된 근거로서 제시한 것은 안정복(1712~1791)의 <동사강목> 등 조선 중후기 학자들이 펴낸 역사지리서들. 특히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10여차례 <고기>를 인용하면서, 실제 <고기>를 보았고, 고려시대에 편찬된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인명·지명이 불경에서 유래된 것이 많아 승려가 편찬한 것”이란 추정까지 덧붙였다는 설명이다.

 
김상현(66) 동국대 사학과 교수
18세기 신경준이 지은 <소사문답병서>에서 <고기>를 인용한 대목도 편찬 시기를 밝히는 근거다. 인용한 <고기> 내용 가운데 고려 현종 때 건립된 직산 홍경사의 비석 돌이 중국에서 온 기록이 보인다는 점에서, 김 교수는 <고기>가 홍경사비가 건립된 고려 현종 17년(1026)부터 <삼국사기>가 편찬된 인종 23년(1145년) 사이 편찬된 것으로 보았다. 구한말 언론인 장지연도 1906년 <대한자강회 월보> 1호의 ‘국조고사’(나라의 옛일)란 글에 “우리나라 사람이 기술한 역사서로는… <동사고기>와 <삼국사기>류가 승려의 손에서 나왔고 … 이들은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보물”이라고 쓴 내용이 확인된다고 김 교수는 밝혔다. 그는 “비슷한 내용이 18~19세기 정원용, 성해응 등의 다른 저술들에서 숱하게 확인된다”며 “<고기> 실물이 어딘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고려·조선시대 역사서 등에 나온 <고기>의 인용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삼국시대 역사가 주종을 이룬다. 단군신화, 고구려 동명왕 건국신화, 백제 박사 고흥의 <서기> 편찬, 신라 시조왕의 오릉, 가야 수로왕 신화, 발해건국, 탐라의 삼성 신화 등을 포함하고 있다. “조선시대 학자들은 설화적 내용이 많아 부정적으로 평가하긴 했지만, 이들이 <고기>를 직접 읽고 인용한 흔적이 상당 부분 발견된다”는 견해다.

이번 논고는 학계에서 처음 <고기>만을 집중 조명한 결과물이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 고려시대 문헌사의 틀에 머물렀던, <고기>에 대한 논의의 영역을 조선시대까지 확장시키는 물꼬를 텄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김 교수의 설대로 고려~조선시대 통틀어 <고기>가 단일본으로만 읽혔을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적지 않다. 발표회에서 토론한 이강래 전남대 사학과 교수는 “<고기>는 <삼국유사>를 포함한 고려·조선시대 옛 사서 등에서 ‘해동고기’ ‘삼한고기’ ‘제고기’ ‘단군고기’ 등 다양한 이름으로 표기되고 있는데, 이런 ‘고기’들이 왜 모두 동일한 것인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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