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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홀로 3남매 키운 고단한 삶도 인문학 공부 뒤 시가 됐죠”

‘희망의…’ 수강 이은숙씨 ☞ 언론사 기사 바로보기
“홀로 3남매 키운 고단한 삶도 인문학 공부 뒤 시가 됐죠”

“퇴근하자마자 열이 확 오른다/아이들에게 따발총을 따따따 따따따 쏘았다/(중략)/총을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아이들에게 다가가 박힌 총알을 빼주려니 내 마음이 더 아파온다.”

9일 동국대 ‘희망의 인문학’ 입학식을 찾은 이은숙씨(44·사진)가 자작시 ‘총알’을 수줍게 읽어내려갔다. 그는 틈날 때마다 수첩에 시를 쓴다. 그는 “일상이 다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문학 공부를 하고 나서 깨달았다”고 말했다.

홀로 3남매를 길러온 이씨가 올해로 3년째 노숙인과 취약계층 시민을 위한 ‘희망의 인문학’ 강의를 듣는다. 그는 ‘이상’이라는 시인의 이름을 모를 정도로 공부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충남 서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결혼, 남편의 행방불명, 이혼이라는 삶의 궤적을 그려온 지난 20여년 동안 생계 이외의 것들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식당에서 일을 마친 뒤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고 새벽 3시에 잠들고 다시 아침 7시까지 출근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면서 “인문학 공부가 그런 내 삶을 돌이켜보게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첫발을 내디디기가 쉽지 않았다. 2009년 지인의 소개로 인문학 강의를 듣게 된 이씨가 받은 첫 숙제는 ‘자기소개서’였다. 그는 “지난 삶을 돌이켜보는 게 너무 괴로워 며칠 동안 글쓰기를 피했다”면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새벽 5시에야 글을 마치고 나니, 마치 의사에게 꼭 맞는 처방을 받은 것처럼 스스로를 치유한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인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이씨는 자아 존중감을 회복했다. 그는 “‘너는 찌질이야. 네 탓에 사람들이 불행하게 됐어’라고 주문을 외치며 스스로를 학대했다”면서 “자존감과 관련된 강의를 듣고 그런 못된 주문이 사라졌다. 가장 불행한 사람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면 나를 떠날 것 같다는 마음에 싫은 소리 한번 못했던 내가 이젠 정확하게 내 의사를 표현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의 변화는 가정을 바꾸어 놨다. 그는 아이들에게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메모지에 적어 건넨다. 또 시에 대한 조언도 받는다. 그는 “ ‘엄마 그 부분은 고쳐, 엄마의 순수한 마음을 쓴 게 아니라 괜히 멋진 말을 갖다붙인 거 같아’라며 아이들이 꼬집어준다”면서 “욕쟁이 엄마가 시인으로 변했다는 소릴 한다”고 아이들을 소개했다. 그는 “최근엔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어서 가족회의 시간을 만들고 더 깊은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에 쓴 글은 ‘있어서 좋은 것’이라는 제목의 시다. “공부는 시험이 있어서 좋고/(중략)/남편은 악연인 줄 알면서 어쩔 수 없는 포기를 알게 해줘서 좋고/자식은 은근한 노후대책 같아서 좋고/다른 사람과의 인연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여서 좋다.” 시 읽기를 마친 그는 “삶이 우리를 무겁게 짓누를수록 인문학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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