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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칼럼] 너는 얼마나 아름답기에 이처럼 짧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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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칼럼] 너는 얼마나 아름답기에 이처럼 짧은가

마스크를 쓸 때마다 나는 베네치아의 작은 마당을 떠올린다.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쫓기는 소녀를 향해 달려드는 짐승을 떠올린다.
또한 사회적 부조리와 상처와 역사의 난폭함을 끌어안은 예술가들이 묻힌 무덤 섬을 그려본다.
전염병을 매개체로 새로운 문명이 예고되는 이 절묘한 시점에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생명은 무엇이며 진정한 건강이란 어떤 것인가를 아는 것이 아닐까.

아! 인생은 얼마나 아름답기에 이처럼 희한하고 단명한가?

젊은 날 이 구절을 읽고 깊은 우물에서 별 하나가 솟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철학자 고형곤의 <선(禪)의 세계> 서언에 나오는 말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유난히 생명의 문제를 절실하게 생각해 보는 때문인지 모르겠다. 최근 이 구절이 다시 가슴을 파고든다.

인생은 아름답기에 짧다는 말 속에는 죽음이라는 말이 숨어 있다.

이 짧고 소중한 인생의 한 자락을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고통스럽게 버텨야 하다니… 누구에겐지도 모르는 분노와 탄식이 저절로 치밀어 오른다. 인간은 가슴에 화살을 꽂은 채 허공을 날고 있는 시한부의 새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계 문제만 아니라면 이 고립의 상태가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슬며시 고백하고 싶다.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 홀로 글을 쓰는 일에 길이 들었기 때문일까. 무리지어 다니며 패거리를 짓고 산만한 번성을 누리기보다 기실 고독과 집중으로 느리고 자유로운 존재에 더 가치를 두고 싶다.

몇 해 전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 대학 초청으로 3개월 동안 베네치아의 리도에 머문 적이 있다. 대학에서 마련한 집 마당에는 놀란 표정으로 무언가에 쫓기는 괴상한 소녀상이 하나 서 있었다. 짙푸른 아이비 넝쿨 담장이 둘러쳐진 하얀 이층집 현관 앞에 이렇듯 얼굴을 찡그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소녀상을 세운 것은 무슨 이유인가. 불길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공동묘지에 서 있는 어떤 비극적인 조각상이 연상되어 나는 늘 이 소녀상을 외면했다.

어느 날 마침 집주인이 대문 앞 수로에다 배를 파킹한 뒤 마당으로 들어섰다. 나는 그에게 이 놀란 표정의 소녀상에 대해 물었다. 주인은 웃으며 “단서는 여기 있지요”라며 소녀의 시선이 가닿는 곳의 풀숲을 손으로 젖혔다. 뜻밖에도 한쪽 풀덤불 속에 날카로운 털을 세운 사자가 당장 물어뜯을 것처럼 달려드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이탈리아 말로 재미있게 설명을 했는데 그중 건강이라는 뜻의 살루테(salute)라는 단어 하나를 나는 알아들었다. 짐승으로 상징되는 죽음과 악에 쫓기며 두려움과 공포에 떠는 소녀, 이 소녀를 나는 그 후 이상한 친근감으로 바라보곤 했다.

메멘토 모리!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이 있으므로 살아 있는 순간이 더욱 아름답고 신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실감나게 표현한 조각이었다.

실제로 1630년경 베네치아에는 흑사병이 돌아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한 아픈 역사가 있다. 산마르코 광장 맞은편에 있는 비잔틴 양식의 살루테 성당은 흑사병이 사라진 것을 감사하며 세운 건강 기념 성당이다.

무서운 전염병 뒤에 다시 찾은 건강이란 얼마나 눈부신 것이었을까. 그것은 육체의 건강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소중한 삶의 에너지를 더욱 확장하려는 뜨거운 희망과 활력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베네치아 리도는 영화제가 열리는 곳으로 잘 알려졌지만 실은 토마스 만의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무대로 더 유명하다. 비스콘티 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에 나오는 호텔 엑셀시오르도 아직 그대로 내가 머물던 집 바로 앞 바닷가에 있다.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도 콜레라가 자욱하게 창궐하고 있다. 지치고 늙은 작곡가 아셴바흐의 병색 짙은 모습과 우울을 배경으로 검은 관을 연상시키는 곤돌라가 물 위에 떠다니는 장면은 인생의 허무와 전염병 도시의 잿빛 이미지를 잘 드러낸다. 거기에 젊음의 상징으로 미소년 타지오의 눈부신 모습이 생명의 그늘과 인생의 탐미를 완벽하게 대비시킨다. 죽음을 품은 도시 베네치아를 말하는 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상징이 무덤 섬 산미켈레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예술가들이 잠들어 있다. 그중 시인 에즈라 파운드와 조지프 브로드스키를 나는 아프게 건너다보곤 했다. 수상버스 바포레토를 타고 무덤 섬을 지날 때마다 시인에게 국가란 민족과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를 되묻곤 했었다.

20세기 미국의 시인 중의 시인이라는 에즈라 파운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친파시즘 라디오 방송에서 독재자 무솔리니를 지지하는 방송을 하여 그 후 전범으로 체포된다. 그리고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그는 수감 중에도 창작을 하고 중용, 대학, 시경 등도 번역한다. 나중에 엘리엇, 헤밍웨이 등이 탄원하여 방면되지만 그의 시적 업적과 시인으로서의 행적은 많은 논란을 남기었다. 러시아 최고의 시인이며 노벨상에 빛나는 조지프 브로드스키는 정치적인 시를 쓴 적도 반체제 행동을 한 적도 없다. 하지만 노동을 하지 않았다는 죄로 소비에트 법정으로부터 사회의 기생충이라는 죄목을 쓰고 원치 않는 미국 망명길에 오른다. 국가의 억압 아래 유형의 시인이 된 그는 나중에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데도 부모가 없는 고향은 고향이 아니라며 미국도 러시아도 아닌 베네치아에 묻히기를 원한다. 시인에게 고난과 유형은 축복이며 진정한 시적 위상을 가질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요즘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마스크를 쓸 때마다 나는 베네치아의 작은 마당을 떠올린다.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쫓기는 소녀를 향해 달려드는 짐승을 떠올린다. 또한 사회적 부조리와 상처와 역사의 난폭함을 끌어안은 예술가들이 묻힌 무덤 섬을 그려본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것이 누구 때문이라거나 혹은 어떤 힘의 우열과 성패, 물질의 성장과 멈춤의 재편성쯤으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미흡하다. 전염병을 매개체로 새로운 문명이 예고되는 이 절묘한 시점에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생명은 무엇이며 진정한 건강이란 어떤 것인가를 아는 것이 아닐까.

그동안 함부로 파괴하고 착취한 자연과 물질 중심적인 삶의 태도로는 결코 자유와 건강을 제대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가고 새로이 다가올 다소 낯선 형태의 시간을 정교하게 대비하고 준비하는 일로 오늘 이 힘겨운 싸움은 가치 있어야 한다.

모든 생명은 어떤 국가, 어떤 계층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태어난다.

나는 나다. 이것이 자연이고 자유이고 민주이다.

아! 생명! 너는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하기에 이처럼 짧은가

시인·동국대 석좌교수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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