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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근칼럼東松餘談] 니전투구(泥田鬪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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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근칼럼東松餘談] 니전투구(泥田鬪狗)

니전투구(泥田鬪狗)라는 한자 사자성어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진흙밭에 개싸움’이란 말이다. 요즘 돌아가는 세태를 놓고 이 말이 웬일인지 실감이 난다. 진흙탕에서 개가 싸움을 하면 어느 개가 이기고 지고를 알 수가 없다. 두 마리가 서로 물고 찢고 헐뜯고 진흙탕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되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서로가 지치면 나중에는 이빨만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기도 하고, 노려보며 씩씩거리기도 하다가, 어느 한쪽이 속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이 되면 제 스스로 꼬리를 말고 온몸이 진흙탕이 된 상태로 은근슬쩍 자리를 피하는 게 개싸움이다. 이긴 개도 말이 이겼다지만 제 놈도 마찬가지 만신창이다. 그래서 옛말에 진흙탕 개싸움은 이긴 개도 진 개도 없다고 했다. 구경꾼 눈요기나 시켜줄 뿐이다.

요즘 정치판은 그동안 등장했던 토착 왜구니 종북 빨갱이니 하는 프레임 전술은 슬며시 사라지고 대신 그저 기회와 명분만 주어지면 상대방의 흠을 잡아 서로 치고받는 한 치 양보 없이 벌이는 말싸움으로 밤낮을 보내고 있다. 기존의 프레임 전쟁은 그래도 명분과 가치와 철학이 있어 보이긴 했는데, 최근의 말싸움은 처음에는 재미가 있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기 시작해 결과적으로 무엇이 진실이고 사실인지, 어느 것이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알 수가 없는 이상야릇한 싸움판이 되고 만다. 이 싸움판의 특징은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힐 수 있다고 생각되면 앞뒤 생각 없이 그냥 쏘아 보낸다. 그리고 우리 편이 조금이라도 당할 것 같으면 닥치는 대로 막 집어 던진다. 도대체 이성과 합리와 냉정이 없다.

김종인 통합당 위원장이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을 찾아갔다고 여권에서 난리를 치니, 야권에서는 5년 전 메르스사태 때 문재인 당시 야당대표는 질본을 찾아가지 않았냐고 맞받아친다. 망사 마스크를 놓고도 또 난리다. 통합당 의원이 망사 마스크를 썼다고 여권의 비판이 나오자 조국·정경심 부부가 법정에 착용하고 나온 망사 마스크 사진을 내놓고 맞대응이다. 광화문 교회 집회 참석자의 코로나 확진자 급증 소동에, 같은 날 민노총 집회 참석자에게는 왜 확진자가 없고 검사조차 하지 않느냐고 소리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여전히 SNS를 통해 자신을 괴롭힌 상대들에게 복수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야권이 청와대 비서진의 다주택 보유 문제를 들고 나오자, 여권에서는 야권 인사에는 다주택자는 없냐고 시비를 건다. 생계형 정치인 출신 광복회장의 뜬금없는 친일파 논쟁은 호남출신 전 대통령의 파묘주장까지 이어진다. K방역의 공은 국민이지 정부가 아니라는 말을 놓고 또 밀고 당긴다. 말싸움의 대표적인 압권은 최근에 나온 조국흑서다. 조국백서가 나오니까 몇 사람의 진보논객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라는 이름으로 이를 타박하는 조국흑서를 내놓았다.

결론을 쉽게 내리기 힘들어 보이는 이 정치판의 말싸움은 어디서 시작일까?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현 정권을 평가하기를 비민주적인 민주세력(Illiberal liberals)이라고 하고, 본문 제목은 민감한 서울(Sensitive Seoul) 이라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여권에서 먼저 말싸움을 걸었을 빈도가 높아 보인다. 이번 정권처럼 거칠고 공격적이고 비타협적이고 내 편만 옳다는 정권은 없었다는 기억이다. 지인이 자신의 SNS에 이런 말을 올려놓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는다. 균형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균형감각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했다. 균형은 그만두고라도 말싸움에 품위라도 지켰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램이다.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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