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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근칼럼東松餘談] 명분과 수단

[하동근칼럼東松餘談] 명분과 수단

지난 1991년은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좀 특별한 해였다. 당시는 문화방송의 동경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시점인데 종군위안부 문제와 북일 국교 교섭문제가 한일, 북일 간에 동시에 터져 나와 연일 눈코 뜰 새 없이 서울로 기사를 송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일복이 터져 고생을 바가지로 했던 한 해였다.

일본에서도 일본의 시민단체 중심으로 종군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는 세미나와 반성을 겸한 규탄 행사 등이 여기저기 열려서 현장 취재를 위한 발길 또한 바빴던 해였다. 취재를 하면서 일본의 종군위안부 관련 시민단체에게 행사에 필요한 경비를 어떻게 마련하느냐고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대답은 일반인의 순수한 후원금과 관련 책자 발행 그리고 기념품 판매 등을 통해 확보하고 있다 했다.

행사의 성격상 일본 정부 지원은 꿈도 꿀 수 없다면서 자원봉사자가 세미나 현장에서 손으로 판매용 기념품을 직접 제작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바 있다. 지금은 그 경향이 더욱 심화되었지만 정치계 진입을 위한 초기 발판으로 이용되는 한국의 당시 시민단체 활동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최근 올해 92세의 종군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 제기로 표면화된 종군위안부 관련 시민단체와 그 중심인물의 활동 내역과 공금 부실관리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 할머니는 종군 위안부를 위한다는 단체가 거액을 지원 자금을 받고도 자신들에게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며 위안부 성금과 기부금의 사용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해당 단체는 할머니가 처음에는 연세가 많아 이상하다는 말을 하다가 공금의 회계 처리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음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더 나아가 시민단체가 사용 내역을 왜 밝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문제의 본질보다는 친일세력의 모략이라는 프레임 전략으로 반발을 하고 나섰다. 90년 출범한 한국 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의 후신인 ‘정의기억 연대’라는 종군위안부 관련 시민단체가 그 논란의 주인공이다. 벌써 여야의 말싸움꾼들이 주변에서 싸움을 거들기 시작했다.

이번 논란을 지켜보면서 80년대 초반, 일본인으로서 처음으로 종군위안부 증언을 한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씨가 방송사 스튜디오에서 녹화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과 91년 8월, 자신이 종군위안부 피해자였다고 밝히는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지켜보던 일본인 시청자의 미묘한 표정이 겹쳐 보이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들 단체가 주도해 그동안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십 년을 계속했던 수요 집회의 의미와 위안부 문제는 한국도 책임이 있다는 논문을 발표한 세종대 박유하 교수를 향한 여론과 법적 공세, 그리고 위안부는 매춘이었다는 류석춘 교수에 대한 과열된 비방전 등은 또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 2005년 자신들을 앞세운 앵벌이는 이제는 그만하라고 했던 심미자 할머니의 모습 또한 새삼스럽다. 이제는 문제를 제기한 종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조차 친일로 치부하는 것인가?

지금 생존해 있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면 앞으로 어떤 명분으로 활동을 전개할 것인가? 명분이 좋으면 수단과 행위가 비합리적이고 불법적으로 이루어져도 좋은 것일까? 그동안 자선사업이나 사회적 보호대상자를 위한 각종 활동에서 회계 불투명 등의 문제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쌓아온 사회적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린 종교단체 지도자나 인사를 수없이 보아왔다. 이번 논란도 혹시 그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우가 앞서는 것은 또 무슨 연유일까? 한국의 시민단체도 이제는 불투명성과 자기 고집, 대중 독재를 벗어던지고 개방성과 투명성을 담보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차원의 활동을 하지 않으면 존립이 어려운 시대에 들어섰음을 느낀다.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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