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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35. 보리심의 문제

김호성 동국대 교수 ☞ 언론사 기사 바로보기

역사적으로 볼 때 인도,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정토종이라는 종파가 하나의 종파로서 독립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거의 모든 종파에서 정토신앙을 나름의 형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일본불교에서는 천태종에서 정토신앙을 발전시켜 왔지만 마침내 정토종의 독립이 이루어집니다.

보리심을 일으키는 공덕은
극락왕생 구하는 일 원인
반대의 경우도 성립 가능
염불하는 마음 곧 보리심

그 정토종을 연 분이 호넨(法然, 1133~1212) 스님입니다. 그분이 정토종 독립의 이유를 밝힌 책을 하나 썼습니다. ‘선택본원염불집’, 줄여서 ‘선택집’이라 부릅니다. 이 책의 주장을 간단히 말하면, “나무아미타불 염불만 하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 다른 수행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전수염불(專修念佛)’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 책을 읽으신 스님 중에서 화엄종의 묘에(明惠, 1173~1232) 스님이 들고일어납니다. 말이 안 되는 사설(邪說)이라고 하면서, ‘선택집’을 반박하는 책을 펴냅니다. ‘최사륜(摧邪輪)’, 즉 삿된 법륜을 꺾는다는 뜻의 제목입니다. 화엄종에서는 “처음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 곧 정각이라”고 말하는 만큼, 보리심을 발하라는 이야기가 없이 다만 염불만 하라는 것은 삿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 ‘최사륜’에 대해서, 다시 정토종에서는 수많은 반박서가 등장합니다만, 오늘 우리가 읽을 ‘관경’의 상품하생(上品下生)에서 발보리심, 즉 보리심을 발하는 문제가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상품하생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상품중생과 마찬가지로) 역시 인과를 믿으며, 대승을 비방하지 않고, 다만 위없이 높은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보리심을 일으킨) 공덕을 회향하여 극락에 태어나고자 원하고 구하는 것이다.”

이 ‘관경’ 말씀에 따르면, 보리심을 일으킨 공덕과 극락에 태어나고자 원하고 구하는 것 사이에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보리심을 일으킨 공덕은 극락에 태어나고자 원하고 구하는 일에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양자 관계는 그 역(逆)도 성립하는 것은 아닐까요? 극락에 태어나고자 원하고 구하는 것이 곧 보리심을 일으키는 일의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나아가서 “위없이 높은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보리심의 사전적 정의를, 선(禪)의 입장이 아니라 정토의 입장에서 해석한다면, 그 보리심은 바로 “극락에 태어나고자 원하고 구하는 마음” 그 자체가 아닐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애당초 보리심을 발하는 것과 극락에 태어나고자 원하고 구하는 것이 둘이 아닌 셈이 되겠지요.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소리 내어서 입으로 염불하든, 마음속으로 아미타불과 극락을 관찰하든 그 자체 속에는 이미 보리심이 들어있게 되는 것입니다. 보리심이 없다면, 단 한 번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소리 내어서 염불 할 수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발원한) 수행자가 목숨이 다하려고 할 때는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모든 대중(眷屬)과 함께 금련화(金蓮華)를 들고서 오백 명의 화불(化佛)을 화작(化作)하여서 이 수행자를 맞이하러 오신다.”

아미타불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만을 데리고 오셔도 될 터인데, 다시 화불을 더 만드셔서 함께 오신다고 합니다. 환상적인 장면 연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오백 명의 화불이 동시에 (수행자에게) 손을 주시고서는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진리의 아들이여, 이제 그대는 청정하며 위없이 높은 깨달음을 얻으려는 마음을 발하였으니, 이제 나는 그대를 영접하노라.’”

앞서 한 저의 분석이 옳다고 한다면,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대는 청정하며 극락에 태어나고자 원하고 구하는 마음을 발하였으니, 이제 나는 그대를 영접하노라.” 이렇게 발무상도심(發無上道心)을 발왕생극락심(發往生極樂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나무아미타불”이라 염불하는 그 소리 속에 이미 보리심이 들어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호성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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