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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파리 그리고 에브뢰에서 생긴 일

문정희 / 시인, 동국대 석좌교수 ☞ 언론사 기사 바로보기
[문화일보]파리 그리고 에브뢰에서 생긴 일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대된 올해도 파리 도서전은 지난 3월 17∼20일 나흘 동안 다양한 공식 일정을 통해 한국의 작가와 책을 소개했다. 그 열기와 관심은 다행히 공식 일정 후에도 식지 않고 이어졌다. 파리 도서전 행사를 마친 다음 날, 기차를 타고 노르망디에 있는 에브뢰 도서관으로 갔다. 시 낭송 초대시인으로 그곳 청중과 만나 밤늦도록 대화를 나누고 팬 사인회도 했다.

프랑스어로 번역된 나의 시집은 제목이 ‘찬밥 먹는 사람’이었는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머니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의미를 확대하면 늘 남을 위해 일하고 자신은 드러내지 않는 사회적 타자들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시집이다. 굳이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 이 시집은 전통 가치 속에 매몰돼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동아시아 여성 시인이 당당하고 솔직하게 현실을 노래한 시집으로 평가돼 작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문학번역원, 대산문화재단의 지원과 정성껏 번역해준 번역자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에브뢰 도서관에서도 프랑스 배우의 멋진 낭송이 큰 기여를 한 것 같았다. 시낭송이 끝날 때마다 청중은 코리아라는 나라에 대해 우호적인 친밀함을 더해 갔다. 여러 질문 중에 한 중년 여성의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은 매우 역동적인 과정들을 치르고 오늘에 이른 나라다. 여성 시인으로 살면서 꾸준히 시를 쓸 수 있는 힘의 근원은 무엇인가?”

 “아일랜드의 유명 시인은 ‘펜은 페니스이다(Pen is Penis)’라고 말했지만, 나의 펜은 피다. 나는 삶의 경험들을 잉크가 아닌 피로 쓴다.”

참석자들이 미소와 함께 박수를 보내왔다.

그날 밤늦게 에브뢰 도서관에서 제공한 차로 파리로 돌아오며 나는 검은 구름 속에 떠 있는 달을 오래 쳐다보았다. 한국어는 세계의 중요 언어에 비해 영향력이나 점유율에 있어 유리하진 않지만, 나의 모국어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삶에 대해 깊이 감사했다.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여러 난관 끝에 시집은 프랑스어로 번역됐지만, 정작 이 원고를 출판해줄 출판사를 찾지 못해 다시 전전긍긍해야 했다. 한국문학, 그중에서도 한국의 시에 대해 관심이 없는 현실이라 예상했던 일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시 이론가이자 시인인 미셸 콜로 교수의 추천사를 달고 이 원고는 드디어 에디시옹 데 팜(‘여성출판사’라는 뜻)의 출판 약속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여성 해방 운동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는 출판사로 오래전부터 정신분석과 문화적·지적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아시아 여성으로는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총리의 자서전을 낸 것이 유일하다고 했다. 그러나 겨우 뚫은 이 출판사도 편집인 가족의 돌연한 자살 등으로 한없이 출판을 뒤로 미뤘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다가 열성적인 문학 출판사 브뤼노 두세와 새로이 계약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시집 ‘찬밥 먹는 사람’은 프랑스에 상륙하게 됐다.

시집이 출판되자 예상 밖의 반응들이 일어났다. 유명한 라디오 ‘프랑스 퀼튀르’의 인기 프로그램 ‘외칠 필요가 없다’에서 45분 동안 특집으로 시 세계를 다루어 주었다. 세계적인 비평가요, 언어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출연한 프로그램이라는 이 방송이 10여 편의 시를 소개하는 동안 출판사의 사이트가 다운될 정도로 열띤 반응이 왔다고 한다. ‘처음 접해 본 한국 시인의 시가 이렇게 당당하고 힘이 있다니 놀랍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대표 문예지인 90년 전통의 ‘유럽’지에 서평이 실렸고, 프랑스의 ‘시인들의 봄’에 한국 시인으로는 처음 공식 초대를 받았다. 그때 나를 인터뷰한 알리그로 FM 독서 프로그램 진행자 소피 아뤼크는 “당신의 시에는 생명과 자유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가 있는데, 그것이 프랑스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것 같다”고도 했다.

‘시인들의 봄’ 축제에 참가하고 돌아온 지 몇 달이 지난 후, 프랑스의 대표적인 예술 채널 AR-TE 텔레비전의 다큐 감독 자크 뎁스가 서울에 나타났다. 그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기적의 한국’ 5부작을 제작하고 있었다. 자크 뎁스는 치밀함과 열정을 동시에 지닌 예술감독이었다. 그는 나의 서재를 우선 찍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의 한국을 상징할 만한 장소에서 시 낭송을 하자고 했다. 서재는 나의 자궁이라며 사양하다가 결국 카메라 장비와 스태프를 나의 서재로 불러들이고 말았다. 한국의 홍보물을 찍으러 온 것이 아니라, 한국이 이룩한 기적과 그 명암을 찍으러 왔음을 몇 번이고 강조한 그에게 설복당해 나는 고층 빌딩과 성형외과와 러브호텔이 즐비한 강남의 대로에서 시낭송 촬영도 했다. “당신의 시를 읽는 동안 날카로운 톱으로 팔을 긁는 것 같은 실감과 통증을 느꼈다”는 그의 소감이 깊고 고마웠다.

그런 배경 위에 올해 한·불 수교 130주년 파리 도서전에 몇몇 작가와 함께 초대됐다. 프랑스에 도착한 날, 브뤼노 두세 출판사는 그동안 나의 시집이 꾸준한 반향을 일으켰다며 인세를 지불했다. 얼마나 정확하게 계산을 했는지 동전까지 들어 있는 인세 봉투를 받아들고 나는 크게 감격했다. 몇만 부가 팔린 책보다 소중하고 값진 인세였다. 프랑스에서 시집 인세를 받다니…. 아름다운 기적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는 1377년에 이미 구텐베르크보다 앞선 현존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 ‘직지심경’을 찍은 선조를 가졌다. 하지만 한국 시집 한 권의 프랑스 상륙이 이런 격랑 끝에야 겨우 이루어진 것이 현실이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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