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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12. 제3 지상관(地想觀)

김호성 동국대 교수 ☞ 언론사 기사 바로보기

“이러한 관상(觀想)이 이루어졌을 때 하나하나 그것을 관찰하여 지극히 명료하게 하여, 눈을 감을 때나 눈을 뜰 때나 잃어버리지 않게 한다. 다만 잠잘 때를 제외하고서는 항상 이 일을 기억한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은 올바른 관찰이고, 만약 이와 달리 관찰하는 것은 삿된 관찰이다.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희에게 고하시기를, 수상관이 이루어졌을 때는 거칠게나마 극락국토의 땅을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삼매를 얻는다면 저 나라의 땅을 보아서 분명하게 요달(了達)하리니, (그것을) 다 (말로) 설할 수는 없다. 이것이 지상관이니, 세 번째의 관찰이다.”

‘올바른 관찰’ 언급된 경문서
제3 지상관 관련 이견 존재
수상관으로 판단하는 견해도
두 가지 가능성 모두 공존

이 제3 지상관과 관련하는 경문에 대해서는 몇 가지 다른 견해가 존재합니다. 우선, “이렇게 관찰하는 것은 올바른 관찰이고 만약 이와 달리 관찰하는 것은 삿된 관찰이다.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희에게 고하시기를, 수상관이 이루어졌을 때(作此觀者, 名爲正觀, 若他觀者, 名爲邪觀. 佛告阿難, 及韋提希, 水想成已.)”라는 문장이 없는 판본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저본으로 삼고 있는 ‘신수대장경’의 경우에는 다 있습니다만, 일본의 불교학자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선생이 펴낸 ‘정토삼부경(岩波文庫)’에서는 28자의 한문은 없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 대신에 “이와 같이 관상하는 것은(如此想者)”이라는 부분이 대체되어 있습니다.

한자로 28자를 4자로 바꾼 것입니다. 원래 4자였는데, 나중에 누군가 28자로 바꾸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나카무라 선생이 처음으로 그렇게 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예전부터 그렇게 읽었던 판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카무라 선생 역시 그렇게 보는 것이 옳다고 본 것뿐입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왜 그렇게 보는 관점이 존재했느냐 하는 것일 터입니다.

그것은 지금 문제가 되는 이 부분의 말씀이 제3 지상관에 속하는 것인가, 아니면 제2 수상관에 속하는 것인가 하는 점에서 의견이 갈렸기 때문입니다. ‘관경’에 주석을 단 해석자들 중에서도 정영사(靜影寺) 혜원(慧遠, 523~592) 스님은 제2 수상관에 속하는 부분이라 보고 있으며, 선도대사는 제3 지상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보고 있습니다. 나카무라 선생과 같이, 문제가 되는 28자를 삭제하고서 그 대신 4자를 새로 집어넣어서 보는 입장은 “이렇게 관찰하는 것은 (중략) 수상관이 이루어졌을 때”까지의 28자가 있어서는 그러한 혼돈이 생긴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말로 “이렇게 관찰하는 것은 (중략) 수상관이 이루어졌을 때”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반드시 제2 수상관에 소속하는 것으로밖에는 해석할 수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근래 타이완에서 ‘정토삼경’(불광산출판부)을 펴낸 왕월청(王月淸) 선생은 “이러한 관상이 이루어졌을 때”를 분명하게 “두 번째 관찰이 완성된 후에”라고 하여서, 그 이후의 부분은 제3 지상관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혼돈이 생기는 것은, 애당초 지상관의 성격으로부터 불가피하게 나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앞의 수상관에서 이미 관찰의 대상이 되는 것이 처음에는 물이었지만, 얼음을 거쳐서, 마지막에는 ‘유리로 된 땅’으로 바뀌어 갔기 때문입니다. 결국, 극락의 물을 관찰하는 것과 땅을 관찰하는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의 “수상관이 이루어졌을 때는 (동시에) 거칠게나마 극락국토의 땅을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한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삼매를 얻는다면 저 나라의 땅을 보아서 분명하게 요달(了達)”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에서도, 그 ‘삼매’가 수상관의 삼매인지 지상관의 삼매인지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두 가지 가능성을 다 갖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관상이 이루어졌을 때”라는 말은 앞의 제2 수상관을 맺으면서 다시 뒤의 제3 지상관을 열어주는 접속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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