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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서양화전공 졸업작품전

기간 : 2019년 10월 30일(수) ~11월 4일(월)

“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할 때 ”… 예술대학 미술학부 서양화 전공 졸업작품전

중·고등학교까지의 생활이란 게 오로지 대학에 입학하는 것에만 설정되어 있기에 정작 그 목표가 달성된 순간 아이들은 맥없이 풀려나 버린 존재가 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격렬하게 맴돈다. 또다시 졸업을 앞두고 벼락 치듯이 해냈던 불안의 흔적들을 내보일 때가 되었다. 진정으로 아티스트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이 갈 만한 대학 자체가 드물고 정작 들어와도 워낙에 취업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극대화하는 터에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면서 지레 전공을 포기하거나 타 전공을 기웃거리면서 스펙을 쌓도록 부추기는 현실에 종속되고 있는 형국이다. 학생들이 대학에서의 전공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부모들의 선택이기도 하다. 학부모들 자체가 우리 사회 현실이 요구하는 삶의 논리에 길들여져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무서운 불안과 공포를 지니고 있기에 아이들에게 권하는 전공이란 결국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는, 돈벌이가 된다고 막연하게 생각되는 전공만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는 안이한 소시민적 삶에 한정 없이 굴복시키는 생의 논리를 내재화한다.

이제야 하고 싶은 것을 할 때가 왔다. 더 이상 학점에 노예가 되어 교수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부모의 기대를 맞출 이유도 없다. 예술이라는 것은 늘 자유롭게 표현을 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예술에서 창작의 기회를 잘라버리면 뭐가 남을 것인가? 정치와 시장밖에 남는 것이 없다. 98% 남들이 추구하는 삶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비범한 세계를 열어가야 한다. 모두가 획일화된다는 것은 위험하다. 졸업예정 학생들은 겁내지 말고 환경을 잘 갖추어 곱게 물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무가 온도, 햇빛, 수분의 삼대 공급이 적절히 배분되어 천연한 단풍을 만들 듯 작품도 개념과 물질 그리고 감각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색깔의 단풍은 다음 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법이다. 이번 졸업 작품의 성공으로 많은 졸업생들이 이 사회에 많은 꽃을 피워주길 기대하며 알에서 나와 세상으로 나아가는 여정에 항상 여유와 행운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지도교수 주도양]

2019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서양화전공 졸업작품전 기간 : 2019년 10월 30일(수) ~11월 4일(월) 장소 : 동국대학교 문화관 B1 동국갤러리

김수영

문득 다시 생각나는 사진이 있었다. 다시 찾아보았다. 찾을 수 없었다. 삭제된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보여 지기 위해 만든 그의 패턴은 쉽게 사라졌다. 이제 아무도 볼 수 없다. 내 드로잉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 작업노트 중에서

SNS 상에 쉽게 올라왔다가 사라지는 이미지들은 지금 시대에 가장 드러나는 문화이자 하나의 현상이다. 이 현상들은 각자의 세계를 만드는데 기여한다. 타인에게 보여 지기 위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각각 세계는 비슷하게 반복되는 패턴을 보인다. 나는 이 패턴에 주목하여, 다양한 이미지들이 조합된 내 시간, 내 공간을 만들어 낸다. 여느 사람들과 같이 내 세계를 만들어 내는 데에 SNS를 사용하고, 누군가 만들어놓은 패턴을 내 것으로 만든다. 타인의 이야기를 내 것으로 만든다.



김효중

“그림은 나를 몰입하게 한다. 그 시간의 집중력은 나의 무기력을 잊게 한다. 지루함 혹은 무기력으로 말해지는 것들은 아마 나와 평생을 함께할 것이다. 계속 그림을 그려야겠다.” - 작업노트 중에서

나는 회화를 일종의 무대로 본다. 무대 위는 엄격하게 통제된다. 무대 위의 모든 사물들은 연출의 의도 내에서 배치되며 인물들은 동선, 표정, 그 외의 사소한 움직임까지 통제된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하나의 무대는 서술적인 표현 없이도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회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의 작업은 사물과 같은 사소한 것에서 출발하기도 하며 내가 탐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나의 상황 등이 직조되어 하나의 화면에 나타난다.



정다인

“나는 자신 있게 흰 종이를 망친다. 나에게 그림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쏟아 낸 다음 숨기고 싶은 말실수를 알아볼 수 없도록 수습하는 과정이다. 구조와 해체의 반복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형상은 나에게 참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멋대로 불을 지르고 최선을 다해 꺼 버리는, 작품 속에서 나 자신은 방화범이자 소방관이다.”
- 작업노트 중에서

각각의 작업들은 심각한 의미나 막중한 생명력을 책임지지 않는다. 그저 던져지고 풀어낼 뿐이다. 작업을 보게 되는 자는 그러한 흔적들을 동시에 겹쳐보게 된다. ‘지금’ 밖에 살 수 없는 인간에게 작가가 캔버스와 보낸 여러 겹의 지금을 들이미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알 수 없는 형상을 보고 무엇일지 판단해내는 것, 그 자체의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 둘 다 지극히 인간적인 선택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한 번뿐인 인생, 마음대로 살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미래를 쉽게 예측할 수 있기에 현재의 행동을 제약당한다. 이러한 충동과 검열 사이의 갈등은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인생을 만들어내고, 대부분이 이를 따라간다. 누구나 경험해 본 망설임을 집약하여 무엇이라고 딱 떨어지게 말할 수 없는 추상적 이미지로 환원한 결과물을 제공하는 역할을 기꺼이 맡고 싶다. 나의 작품은 망설이기 때문에 살아가고, 살아가기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을 위한 불씨 혹은 물벼락이다.



정선희

“공허함과 음울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원동력이다. 가장 기뻐야 할 때조차 그 이후의 공허함을 미리 생각하는 나로서는 공허함을 메꿔야 하는 게 아닌 비워둔 그 상태로 두는 게 나를 위한 방법임을 알았다.”
- 작업노트 중에서

순간 순간 우울감이 자리잡을때가 있다. 그건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행복하게 웃고 있을 때 들이닥치기도 한다. 그 감정들은 무형의 것처럼 모호해서 어떤 특별한 인과관계 없이 생겨난다. ‘우울‘ 어쩌면 그건 그냥 나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림속에 녹아들게 된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그림을 통해 어떤 위로나 소통을 바라거나 이 그림에서 이 감정을 느끼라는 강요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내가 바라본 세상을 보여주고, 몇몇은 그걸 이해해주고, 몇몇은 나의 그림을 좋아해 준다면 행복할거 같다.



최하경

“나는 완전한 어둠을 방해하는 빛이 불편하다.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노력해보지만 역부족이다. 끝내 새어 들어오고 마는 그 작은 빛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좌절감은 들지 않는다. 차단하고자 시도하던 과정에서 이미 그 빛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 작업노트 중에서

나는 빛을 곧 죽음으로 해석한다.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주하게 되는 죽음을 틈새로 들어오는 빛과 연결 짓는다. 죽음은 그림에서 작은 빛의 형태로 등장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여기저기 커튼을 쳐보지만 그 사이 어딘가로 반드시 빛은 스며든다. 그러나 나는 빛을 맞이할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한다. 커튼을 치는 행위는 결국엔 빛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의미 없어 보일 수 있지만, 그 과정을 반복하며 우린 서서히 빛의 투과에 무뎌진다. 나는 현재에 충실한 이 과정과 시간이 그림 속 커튼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찾아 올 죽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기 보다는 끊임없이 가리고 막으며 연습해야한다. 나는 어쩌면 더 잘 죽기 위해 지금을 힘겹지만 힘내어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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