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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리더스 학생 110여명, 캄보디아로 해외봉사 다녀오다

8박 9일간... 현지 초등학생 대상 교육봉사와 문화봉사 등 진행

우리대학 학생 리더스 프로그램인 ‘동국 108리더스’ 소속 학생 및 인솔자 114명(학생 112명, 인솔자 2명)이 지난 4일(목)부터 12일(금)까지 8박 9일간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해외봉사활동을 다녀왔다.

해당 학생들은 지난 3일(수) 오후 2시 정각원에서 「제11기 동국108리더스 해외봉사」 발대식을 갖고, 해외봉사활동을 통한 도전정신 함양과 건학이념인 자비실천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봉사활동에 임했다.

해외봉사 파견을 가는 ‘동국108리더스’ 학생들은 캄보디아 씨엠립 로터스월드 및 삼본(samborn)초등학교에서 ▲교육봉사(음악, 미술, 체육, 응급 및 안전, 위생, 환경교육) ▲문화봉사 등을 진행했다.

한편, 우리대학은 지난 2007년부터 108명의 학생들을 선발해 리더십과 봉사정신 함양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학생 리더스 프로그램 ‘동국108리더스’를 운영해왔다. 매년 겨울방학 캄보디아 등으로 해외봉사단을 파견해 초등학교 벽화공사, 도서관 증축, 우물파기, 예체능 교육 등을 실시해왔다.


동국108리더스 11기 경영학과 이인규 해외봉사단장 후기

꿈이었을까
인천공항에서의 우리 11기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태양이 막 떠오르는 아침에 우리는 공항에 모였고, 또 헤어진 것도 그로부터 8일 후 아침이었다. 8일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이 느낌은, 마치 다른 시공간으로 모험을 떠났다가 돌아온 느낌이었다.

4개월간의 준비
나는 왜 해외봉사단장이 되고 싶었을까? 정말 부끄럽게도, ‘캄보디아’라는 나라와 ‘해외봉사’에 대한 깊고도 큰 생각이나 비전은 없었다. 다만, 2017년 1학기를 보내면서 108리더스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140여명의 친구들과 보내는 순간순간이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래서 이들에게 더욱 의지가 되고 의미가 되는 사람이고 싶어서 해외봉사단장이라는 역할에 지원했다. 여름방학 때부터 마음을 졸였지만, 내가 하면 정말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히, 처음에는 그랬다.

단장으로 뽑히고 처음 맡은 일은 가을 축제 준비였다. 학교 곳곳에서 활약한 우리 11기 능력자들 덕분에 축제에서 250만원이 넘는 순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 수익금은 해외봉사 준비를 위해 사용할 금액이었다. 그러나 금액보다도 우리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2학기에도 열심히 달릴 수 있는 에너지와 자신감이었다.

한편, 우리 11기는 140명 가까이 되기 때문에 해외봉사 참여 인원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늦게 준비를 시작했고 기나긴 추석 연휴가 있다는 사실도 내 마음을 더욱 조급하게 했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11기 친구들은 각각의 능력과 색깔을 확실하게 표현할 줄 아는 멋쟁이들이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많은 이들과 함께 캄보디아에 가고 싶었다. 다만 나로 인해, 이 과정이 조금 늘어져서 해외봉사 일정도 하루 줄어들고 캄보디아에서의 생활도 조금 더 어려워진 것 같아 지금까지도 미안한 마음을 안고 있다.

10월에는 해외봉사 후원을 위해 여러 기업에 연락을 하였고, 본격 해외봉사 준비는 11월부터 시작했다. 11월 초에 있었던 2차 교육 날에, 백팔친구들이 하나둘 씩 내게 격려의 말을 건네줬던 적이 있다. 혼자 스트레스 받지 말고 같이 하자고. 성격상 항상 생각만 많고 표현을 잘 하지 않는 내가 굉장히 답답해 보였을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소통을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오히려 의사표현을 잘 하지 못한 채 단체를 이끌어왔던 것이다.

그때서야 나는 ‘단장이니까 나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항상 의지가 되어야 한다. 내가 고민을 더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너무 혼자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친구들이 이렇게 내게 격려하는 상황을 만든 것 자체가 미안하기도 했지만, 점차 일과 사람을 대할 때 마음을 열 수 있었고 조금씩 더 편안해졌다. 나를 일깨워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항상 애쓰는 회장단장단과 조장들을 비롯해 교육봉사팀장, 노력봉사팀장, 총무 그리고 응급팀장의 소중한 도움이 더해져서 해외봉사 준비가 더욱 힘을 받을 수 있었다. 음악, 미술, 체육, 문화, 안전, 환경, 위생, 응급 과목으로 8개 팀을 나누고 각 팀별로 회의 진행과 물품 및 시연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모든 팀 회의에 거의 다 참여하여 간식제공(주로 젤리)과 사진촬영을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해외봉사 인원들에게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주고 싶었다. 단장단의 기획에서 시작된 해외봉사 준비가 점차 백팔 전체로 확대되어, 무게를 다함께 짊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 어깨는 전보다 가벼워졌으며, 준비하는 내내 백팔 모두에게 너무 고마웠고 즐거웠다. 110여명이 함께 만들어가는 분위기 자체가 너무 좋았고, 순수하게 같이 호흡하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나는 시험기간이 오히려 조금 더 편할 정도로 전체가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발대식 날 짐을 싣고 나서야 비로소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우리는 캄보디아로 떠날 준비를 마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8박 9일간의 캄보디아
하루 전체를 이동하는 데만 보냈던 날은 처음이었다. 베트남에서의 경유가 이렇게 길어질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캄보디아는 한국과는 너무 다른 공간, 다른 세상이었다. 밤이라 그랬을까. 고요한 가운데 이국적인 소리가 이따금 들려오고, 빌딩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별들이 가만히 우리를 맞이해줬다. 창고 및 본부로 사용할 스탭 하우스를 정리하고 샤워할 때쯤 실감이 났다. ‘아아, 내가 방금 본 게 두꺼비이고 우리 숙소 앞에는 도마뱀이 있었지, 참.’

여기서의 생활은 단순했다. 6시에 기상 후 바로 아침식사를 하고 오전에는 교육봉사, 점심식사 후 오후에는 노력봉사, 저녁을 먹고 전체 회의 및 조별 회의를 하면 하루가 마무리된다. 우리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공지사항과, 다음날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고 학교를 어떻게 꾸며야 할지를 매일 함께 논의했다. 또한, 갑작스레 더웠던 날씨와 샤워 및 빨래와 같은 일상생활도 점점 익숙해졌고, 하늘을 보며 산책하거나 밤에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하루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11기가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 뭔가 흐뭇해서 종종 웃음이 났고,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캄보디아에서의 다양한 변수 앞에서 우리는 태연할 수 없었다. 봉사 첫 날에 우리는 삼본초등학교의 우리가 맡을 아이들 중 1학년의 한 학급이 줄었다는 사실과, 6학년의 한 학급이 생겼다는 사실을 접했다. 또한, 생각보다 컸던 학교 건물들과 화장실의 모습도 처음 봤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도착해서 지쳐 있는데, 새로운 상황이 주어지니까 사실 정말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지금까지 준비한 것들이 아이들과 이 학교에 잘 맞지 않거나 아예 엎어질 수도 있겠구나.’ 싶어 불안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특히 불안했던 내게 인사를 먼저 건네준 것은 바로 아이들이었다. 누구라도 캄보디아 아이들의 눈을 본다면 평생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눈은, 정말 너무나 맑아서 나도 눈을 번쩍 뜨고 활짝 미소를 지어야만 할 것 같은 눈이었다. 만난 지 단 한 시간도 안됐는데도 아이들은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준비해왔는지에 관계없이, 그저 매 순간순간을 해맑은 미소로 반겨주었다. 통역선생님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준비한 내용을 전달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크게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우리와 짧은 대화도 하고 서로 엉겨 붙어 장난도 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너무 식상한 표현이지만, 아이들에게 우리가 가진 것을 전해주러 왔다가 오히려 우리가 아이들로부터 더 큰 선물을 받고 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덧붙여서, 우리는 아이들 덕분에 전쟁 같은 초등학교 쉬는 시간의 모습과, 체력의 중요성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잠깐의 여유도 없이 노력봉사를 실시했다. 4일 동안 학교 건물의 먼지를 털고, 페인트를 칠하고, 벽화를 완성하면 되는 작업이다. 그러나 너무 뜨거운 날씨와 열악한 장비가 최대의 난제였다. 조별로 각 건물을 할당해서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건물들을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진행상황과 백팔친구들의 몸 상태를 확인했고, 간식 배달과 인원 재배치를 했다.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건물 주변 땅이 고르지 못할 뿐 아니라 먼지가 너무 많았고, 우리는 먼지와 페인트를 거의 뒤집어썼다. 간혹 발생하는 사고나 부실한 장비로 인해 일을 더 진행할 수 없었을 때에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열심히 태양빛을 쬐며 작업하는 인원들에게 미안해서라도 나는 멈출 수가 없었고, 말을 걸거나 간식을 나눠주는 방법 등으로 에너지를 줘야 했다. 노력봉사는 온전히 내가 결정을 내려야만 했던 그런 어려운 시간이었다.

봉사 이틀이 지나고 일요일이 되었다. 해외봉사의 절반을 보낸 후의 꿀 같은 휴식이었다. 우리는 이미 계획한 대로 1학기 조로 움직여서 앙코르와트를 방문했다.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사원인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 국기에 그려진 곳이다. 국기에 새겨지는 장소답게 캄보디아인의 정신과 문화의 정점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마주하니 웅장한 역사가 가슴에 더욱 와 닿았다. 오후에 방문한 타 프롬 사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역사공부도 의미 있었고 하루 종일 너무 오래 걸어서 피곤했지만, 평생 한 번 올까 말까한 곳에 와서 우리는 예쁜 사진 찍는 것이 더 좋았다. 특히 1학기 조는 너무 바빠서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는데, 함께 움직이면서 1년을 정리하게 되어 정말 다행스러웠고 감사했다.

달콤한 휴식을 경험해서인지,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몰두한 덕분에 교육봉사와 노력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봉사완료 행사 후 아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자유여행 일정이 있었다. 해외봉사를 함께 한 2학기 조와 함께 너무나 편한 마음으로 캄보디아 시내를 돌아다녔다. 사실 나는 긴장이 다 풀려서 우리 조와 함께 있을 때는 아무 말이나 했고, 또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함께 마사지도 받고 캄보디아의 주요 이동 수단인 툭툭이도 타보고, 우리 조 옷도 맞춰 입고 다 같이 흥정도 하면서 그저... 마냥 행복했던 기억만 남는다. 단장 역할 때문에 조 활동에 종종 빠져서 너무나 미안했고, 그럼에도 항상 응원해주고 잘 챙겨줘서 정말 고맙다.

캄보디아에서 쇼핑한 물건들 뿐 아니라, 여기서 얻은 소중하고 행복한 추억과 경험들이 내 가방과 가슴 속을 어느새 가득 채웠다. 현실로 돌아오는 데에는 역시 하루가 걸렸고, 나는 캄보디아라는 행복한 꿈에서 지금 막 깨어났다.

그 후, 한국
글을 쓰면서 지난 1년을 돌아보았다.

우리 11기는 인원이 140여명으로 굉장히 많다. ‘대규모’라는 성질은 우리 11기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인원이 많아서 관리가 힘들고, 친해지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1학기 초반부터 많이 들었다. 많아서 좋다는 이야기는 잘 듣지 못했다. 물론 맞는 이야기다. 그래도 좋은 점이 한 두 개 쯤은 있지 않았을까? 인원이 많은 덕분에 1학기 에이스포럼과 가을 축제도 이만큼 진행할 수 있었고, 팔정도에서의 우리 춤이 더 예쁘게 나왔던 것 같은데. 맞지?

마찬가지로 해외봉사를 준비하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던 것과 맞물려서, 많은 인원이 뜻을 모아 오히려 압축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즉, 노를 저어서 속력을 내기 위한 에너지는 충분했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었다. 나를 짓누르던 압박감이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나만 잘하면 된다, 내가 못하면 11기 해외봉사는 끝장난다. 나는 어떤 리더십을 가지고 있을까. 애초에 내게 리더십이란 게 있나?’ 나는 이 문장을 계속 내게 던지곤 했다. 위에 긍정적으로 서술하였지만 나의 해외봉사는 대부분 다음과 같은 것들-항상 전체를 봐야 하고 무언가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 더 뛰어난 사람과 끊임없이 나를 비교하는 습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카리스마의 부족, 수많은 내적 갈등과 친구들과의 갈등-로 채워져 있었다.

현지에서의 불안감은 훨씬 심했다. 나는 인천공항에 모여서 출발 할 때부터 긴장했다. 내 직책에 대한 역할 수행을 완벽하게 요구받는 순간이 왔다는 사실에 미칠 것만 같았다. 도착해서도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못하면 우리가 4개월 준비한 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리고 귀국할 때에도 교수님 대신 인솔자가 되어 만에 하나 발생할 사고가 있을까봐 인천공한 도착할 때까지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게다가, 온전히 그 순간순간에 집중을 잘 못했다. 예를 들어, 교육봉사는 우리가 편하게 진행하면 되지만, 노력봉사는 목표치가 있어서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과정도 충분히 의미 있지만 ‘리더는 결과로 말한다’는 말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봉사 중에도 노력봉사 할당량을 채울 생각만 했고, 교무실가서 전지나 교육물품 부족한 것을 계속 고민하느라 내 마음이 우리 조와 함께 있지 못했던 순간도 자주 있었음을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그러나 아마 또 식상한 이야기겠지만, 우리의 해외봉사는 지금 우리가 함께여서 성공했다. 나는 이 해외봉사가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고, 2017년의 수많은 사건들 중 단 한 가지라도 달라졌다면 우리는 지금 이 모습으로 성공할 수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내가 어리석게도 계속 혼자 끙끙 앓다가 쓰러졌으면, 내가 해외봉사를 정말로 망쳐버릴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캄보디아에서 나는 부족한 내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

백팔 선배들은 해외봉사를 ‘108리더스 활동의 꽃’이라고 이야기한다. 정말이다. 모두가 다 그렇겠지만 8박 9일뿐만 아니라 2학기가 해외봉사 그 자체고 꽃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아이들의 눈망울과, 앙코르와트의 모습과, 캄보디아의 햇살을 모두 마음에 품은 꽃이다.

나는 1학기 조장과 2학기 해외봉사단장이라는 역할을 맡은 덕분에 11기 여러분들을 최선을 다해 서포트할 수 있었고, 이 사실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자랑스러운 부분이 될 것이다. 평생 행복하게 기억할 2017년을 선물해 준 우리 108리더스 11기에게 온 마음을 다해 감사드리며, 심태은교수님과 역량개발센터 및 ACE사업단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싶다.

어쿤. 캄보디아! 감사합니다. 108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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